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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2일 차

by 라원

2일 차, 경기 여주에서 충남 충주까지 걷는 여정이었다.

원래 계획상으로는 충주에서도 남쪽인 충주 수안보까지 가려고 했다.

(수안보는 충주 시내에서 20km 넘게 더 가야 한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7시 반이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1일 차 출발하기 전에 3시간밖에 못 자고 그렇게 땡볕에서 오래 걸었으니..

알람 꺼버리고 그냥 계속 잤다 ㅎㅎ

그래서 8시가 다 돼서야 출발했다.


어쩔 수 없이 원래 계획보다 20km 덜 가서, 충주역 부근까지만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원래 이틀 차에 가장 길게 기동해야 했었다. (약 70km)

즉, 20km를 덜 간다고 해도, 50km나 걸어야 했다


(심지어 이틀차부터 폭염주의보였음)




트레일 러닝화를 신으려다가 작게 느껴지길래 갑자기 노선 틀어서 그냥 러닝화를 신고 왔더니...

발 뒷꿈치에 물집이 엄청 크게 잡혔다.


아침부터 물집 때문에 고생하면서 가고 있었는데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복숭아 직판장을 지나치는데 복숭아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출발했는데 근처에 식당도 없던 터라, 정말 조심스럽게 낱개로 팔아주실 수 있으신지 여쭤봤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그냥 먹고 가라고 하시며 복숭아 하나를 그 자리에서 잘라주시고,

하나는 또 가지고 가라며 싸주셨다.

이때 먹은 복숭아 맛은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뽀득뽀득 씻은 복숭아를 껍질 채로 먹었는데 이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가기 전에 사장님께도 메모 부탁드려서 받았다.


복숭아 덕에 힘내서 계속 걸어갈 수 있었다!

장호원읍의 감곡(?) 쪽이 식당가가 많은 도심지역인 것 같아 그까지 쭉 가는데

나를 계속 보고 계시는 한 사장님을 발견해서 인사드리니 이렇게 시원한 물이랑 음료도 제공해 주셨다.


아직 세상은 따뜻하구나...!!


뛰면 오히려 괜찮은데 식당 찾느라 계속 걸으니까,

발 뒷꿈치의 물집이 너무너무 거슬려서

근처에 있는 약국에 들어갔다.

물집 터뜨릴만한 도구가 있을까 싶어서 여쭤보았더니 그냥 쓰라며 주셨다.

저걸로 물집 터뜨려서 물 빼고 밴드 붙였다.


그렇게 자가치료를 마치고 주변에서 식당 찾다가 한 분식집에 들어갔다.


김밥 먹으려고 갔는데, 다른 메뉴들도 너무 맛있어 보이길래 김치참치덮밥을 주문했다.

근데 양이 진짜 많았다. 밥도 두 공기는 되는 것 같았고, 김치참치도 이걸 다 먹을 수 있나 싶을 만큼 많았다.

(그런데 다 먹음 ㅎㅎ)


사장님께도 메모받고 자리를 나섰다.


이때 한창 팥빙 열풍 불고 있을 때여서 한 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근처에 메가커피는 없고 더벤티가 있길래 들어갔다.

안에 에어컨도 너무 춥게 틀어놔서

팥빙수 하나 빠르게 다 먹고 다시 나왔다.


달고 차가운 거 먹으니까 갑자기 연료충전된 것처럼 에너지가 다시 생겼다.



영상에서는 안 나왔지만,

한 행인 분께서 먼저 말을 거셨다.

“국토대장정 하는 거예요? 나도 자전거로 했었는데 “


책을 품고 다니시는 분이었다. 이야기를 잠시 나눠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생각이 깊으시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게 느껴졌다.

이 더운 날에 행인분들 뵙기가 쉽지 않은데,

어딜 가시는 길이셨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닿은 인연 하나하나가 모두 너무 소중하고 감사했다.

수도권을 벗어나니까 보이는 논밭 view

이게 보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 평온한 장면

각박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편안한 곳

길 가다가 또 행인을 만났다.

70대쯤 되어 보이시는 할머님께서 이 땡볕에 서계시길래 말을 붙여보았다.


아래에 있는 하천에서 물놀이하다가 올라오신 거라고 ㅎㅎ

일행분이 아직 밑에 계셔서 보고 있는 거라고 하셨다.


‘나도... 물놀이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래서 가다가 결국 나도 입수했다 ㅎㅎ

입수라기엔 너무나도 얕았지만, 무릎까지 적시고 나왔다.

한 결 시원해지고 기분도 좋았다.


사실 샌들을 이러려고 가지고 온 건 아니었다.

3일 차부터 비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러닝화가 젖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비는 무슨... 구름 한 점 없었다^_^)


마침 물이 다 떨어져서 근처에 보이는 경로당에 들어갔다.

할머님 열 분 정도 계셨는데, 손녀 뻘 되는 내가 혼자 고생하고 있으니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 하셨다.


“물만 마시면 돼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며 또 길을 나섰다.


경로당을 나서는데 그늘에 바람이 너무 기분 좋게 불길래, 잠시 여유를 부렸다.

바로 앞 평상 그늘에서,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차소리가 아닌 새소리를 들으며,

휴대폰이 아닌 뭉게구름을 보며


이렇게 기분 좋은 휴식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정말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

어딘진 모르겠지만 해가 점점 떨어져 갈 때였다.

그냥 기분 좋아서 평소엔 잘 안 찍던 파노라마샷으로 찍어봤다 ㅎㅎ


안 해보던 것들, 낯선 것들을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했기에 작은 거 하나하나 신경 썼던 것 같다.

(원래는 친구가 파노라마 찍으면 '엥 요즘 파노라마 누가 찍냐;;'이랬던 난데...!)

충주역 근처 다 와갈 때쯤에는 노을이 져갔고,

정말 행복했다.


이 순간을 위해서 10시간을 걸었구나 싶었다.

낯선 도시에서의 예쁜 풍경,

그리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실천하는 나


그냥 이 모든 게 낭만이고 행복이었다.



원래 가려던 곳까지 20킬로나 못 가서 걱정도 됐지만,

일단 먹고 보자는 마음에 배달음식을 시켰다.

그다지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이틀 차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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