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는 현재적이고 실물적이고 집중적인 삶을 살다 간 멋진 인간이다.
나에게 롤모델이 있다면 바로 조르바일 것이다.
- 박웅현, <책은 도끼다> 중에서
올 가을 단풍을 실컷 누리고 있다. 작년엔 강원도 인제에 살면서 그 고운 풍경을 보고, 또 보느라 지루한 줄 몰랐는데 다시 도시로 나와서도 단풍만 눈에 들어온다.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진다는데, 나는 꽃도 좋고 나뭇잎이 돋아나 물들고, 모두 다 떨어지는 순간 모두가 좋다. 역시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이번 달 북클럽에서 회원들과 함께 읽고 있는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20대 중반에는 절반도 못 읽고 덮었다. 조르바가 여성을 얕보는 것 같은 대화에서는 '이거, 도저히 못 봐주겠구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보니 알겠다. 이 책이 쓰인 배경은 2024년이 아니며 대한민국이 아닌 그리스의 크레타 섬이라는 사실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은 조르바를 자신의 롤모델이라 했다. 내게 조르바는 어떤 사람일까. 실존 인물이라는 조르바를 지금, 만나볼 수 있다면 무엇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소설 속 '나'의 눈에 조르바는 야생의 언어를 내뱉는 사람, 원시성을 그대로 가진 남자이다. 정확히 나와 반대인 사람인 것 같아 거부감이 들면서도 부럽다.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과 만나 대화해 볼 수 있다면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겠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조르바. 내 삶에서 조르바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예사로 보아 넘기는 일, 무심코 지나치는 일들도 조르바 앞에서는 갑자기 무서운 수수께끼로 떠오른다. 그는 남자나,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의문을 갖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매일 마주하는 모든 사물, 사람들을 마치 처음 보듯이 대할 수만 있다면!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 기쁘고 감사할 것만 같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간 소설 속 인물을 만나보는 일은 자주 해줘야 하는 이유다. 다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꺼내 읽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올 한 해를 열 달 넘게 살아오면서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다. 다시, 조르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별 것 아닌 일에도 웃고 울고, 마음껏 감동받을 줄 아는 내가 되고 싶다. 그렇게 남은 한 해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