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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물 올리는 시간, 대화를 시작하는 시간

by 글쓰는 워킹맘
물 끓일까? 오늘은 어떤 차로?


매일 밤, 우리 부부는 차를 마신다. 얼른 차를 마시고 싶어 퇴근을 기다릴 정도다. 집에 오면 먼저 준비된 사람이 물을 끓인다. 찻물 올리는 시간이 우리 부부의 진짜 저녁인 셈이다. 물을 끓이면서 회사 얘기 대신 우리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찻물 올리는 시간이 곧 우리가 대화를 시작하는 시간이 된다.


오늘 밤은 어떤 차를 마실까 고민하는 순간조차 즐겁다. 보통 밤에는 오래된 보이숙차를 꺼내 들곤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밤잠을 깊이 못 자고 있어서다. 99년에 만들어졌다는 숙차를 꺼내 차호에 넣으면 회사 일을 다 잊을 수 있다. 물론, 다 잊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이 찻자리와 동기화된다. 일에 찌든 나는 남편과 차를 나눠 마시는 우아한 사람으로 변신한다.


KakaoTalk_20240511_140659485.jpg 우리 집 찻상은 늘 남편의 손길로 정갈함을 유지한다


오늘 비가 와서 그런가, 차 맛이 깊고 단 것 같아.


차 맛은 사람 손을 타고, 그날그날의 날씨에 좌우된다. 처음엔 이 미묘한 차이를 잘 느끼지 못했지만, 차를 마신 지 20년쯤 되어가니 알 것 같다. 유난히 차를 맛있게 우려내는 사람이 있다. 차 맛이 더 깊어지는 날도 있다.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이라면, 차 맛이 더 좋게 느껴진다. 그럴 때 신이 난다. 맛있는 음식은 탐하지 않는 편인데, 차의 좋은 맛에 약간 집착하고 있는 것도 같다.


언제부턴가 내가 내리는 차 맛이 별로인 것 같아 남편이 차를 우린다. 남편이 없을 땐 내가 차를 내릴 때도 있지만 이상하다. 똑같은 차인데, 내가 내리면 맛이 그냥 그렇다. 나의 손맛을 내가 믿지 못하는 탓이다. 남편이 차를 내려주면 맛이 깊고, 힘이 느껴진다. 이건 차를 내리는 남편의 손맛이 좋은 것인지, 남편에 대한 나의 마음이 깊어지기 때문인 지 둘 다 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부부가 차를 마시면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의 보이차 이야기는 특별할 게 없다. 어떤 부부는 함께 골프를 치고, 미식 여행을 떠나고, 퇴근하면 맥주나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고, 골프를 치지도 않고,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한 차 생활이 우리 부부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볼까 한다. 어쩌면 진짜 대화가 필요하고, 함께 할 만한 취미를 찾고 있는 분들께 작은 힌트를 드릴 수도 있을 테니까. 보이차를 통한 우리 부부의 시간을 기록하고 나누고 싶다. 오늘도 서로에게 차 맛이 어떠냐고 묻는 우리 부부. 어쩌면 차 맛보다 궁금한 건 서로의 마음일 지도 모르겠다.


차 맛 어때? 좋지? 더 마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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