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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함께 차를 마시게 되었을까

by 글쓰는 워킹맘


차 맛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로 그 맛이 결정된다.
- 이어령의 말 중에서


우리는 왜 함께 차를 마시게 되었을까

우리 부부는 커피를 잘 모른다. 커피맛도 모르고, 커피에 대한 지식도 없다. 좋아해야 더 많이 알 수 있고, 더 알아야 좋아할 수 있는 법인데 우리와 커피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회사 생활하면서 하루에 두 어잔 커피를 안 마실 수 없는 법인데, 나는 체질적으로 커피가 잘 맞지 않았고 남편은 나이 들면서 몸이 커피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둘 다 술을 잘 못 마시면서 차를 1리터, 2리터도 마실 수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처음 보이차와의 인연은 내가 먼저였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위염으로 고생해서 커피와 친하지 않았다. 평소 커피만 마시면 손이 떨리고, 잠을 자지도 못했고, 속 쓰림에 괴로웠으니 커피를 대신할 것을 찾다가 보이차를 마시게 됐다. 결혼 전부터 남편에게 보이차를 권했지만, 남편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용 보이차를 구해달라고 했을 때도 유난하다고 했던 남편이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남편의 일상에도 보이차가 스며들었다. 함께 커피를 마시지 못하니 보이차를 마시면서 부부간의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커피는 텐션을 높이지만, 보이차는 기운을 차분하게 내려 앉히니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부부간에 보이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조용히 대화하는 모습이라니. 누구나 꿈꾸는 한 장면이 아닌가.


오늘 습해서 차가 더 맛있네! 더 마실 수 있어?


장마철에 마시는 보이차는 정말 맛있다. 날이 습해져서 인지 보이차도 습기를 머금는다. 여름이 되면 우리 몸엔 냉기와 열기가 뒤죽박죽 뒤섞이게 되는데, 보이차를 마시면 땀구멍이 열리고, 기분 좋게 땀 흘릴 수 있다. 2시간 정도 보이차를 마시다 보면 화장실에 대여섯 번은 드나들게 되고, 속옷이 흠뻑 젖기도 한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에는 오래오래 보이차를 마시며 땀을 흘리고, 평일엔 이른 새벽에 차를 마시기도 한다. 오늘 아침엔 습한 기운이 느껴지자 남편이 오래된 숙차를 꺼내 들었다. 한두 잔 만에 땀을 흘리니 몸이 가벼워졌다. 정말 습한 날에 보이차가 더 맛있다.


10년 뒤, 20년 뒤 늙어서도 보이차 같이 마시려면 아프지 말자!

이렇게나 좋은 보이차를 매일 마시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슬플까 상상한다. 노인이 되어서도 보이차를 마실 수 있으려면 정말 건강해야 한다. 병에 걸리면 차를 마시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나이 먹어 지금처럼 좋아하는 보이차를 아무 때나 마시려면 나의 남은 40대, 남편의 5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계획을 짤 수 있다. 우리 부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보이차를 만나면 몇 개씩 사 모으기도 한다. 더 늙어서 마실 보이차를 미리 준비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더 먼 곳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차 맛을 조금이라도 더 잘 느끼려 집중한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입을 즐겁게만 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함께 마시는 차 맛이 세상 최고이다

같은 찻잎을 우려도 어제와 오늘 차 맛이 다르다. 날씨 영향도 있지만, 차를 마시는 우리의 몸과 마음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차 맛은 다르더라도 우리가 함께 마신다면 그 차 맛이 세상 최고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 언제라도 물을 끓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를 우려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 귀한 순간을 많이 가지게 될 것 같다. 커피 대신 보이차에 정착하길 잘했다. 보이차 덕분에 부부 관계가 좋아지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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