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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살피게 하는 찻물 한 잔의 힘

by 글쓰는 워킹맘
지금 컨디션은 어때? 차 잘 들어갈 거 같나?

우리는 차를 참 잘 마신다. 서로의 컨디션만 좋다면! 그래서 우리 부부는 차를 마시기 전 서로의 컨디션을 살핀다. 사실 차 마시기에 가장 좋은 때는 이른 새벽이다. 완벽한 공복 상태일 때 뜨겁게 우려낸 보이숙차의 노련함은 우리를 편안하게 감싸 안는다. 나는 식도염 환자이지만, 요즘 많이 좋아진 상태라 오래된 보이숙차는 빈 속에 마셔도 문제없다. 차가 잘 들어갈 것 같냐는 물음은 서로를 살피는 첫 질문인 셈이다.


지난 금요일 우리 부부가 즐긴 밖에서 즐긴 찻상차림


언제, 어떤 차를 마시는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차를 마시는 각자의 상태가 중요한 탓이다. 아무리 좋은 차를 값비싼 차호에 우려내도 차를 마시는 사람의 몸 상태가 별로면 차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차를 마시기 직전, 과식했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중요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차를 마셔서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차라리 차 한 잔을 포기하고 쉬는 게 나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서로의 얼굴


네 얼굴을 보면

내 얼굴이 웃고


내 얼굴을 보면

네 얼굴이 웃고


- 유종우, <차 한 잔과 짧은 시> 중에서


우리가 마시는 차 한 잔은 그저 차맛을 즐기기 위함만은 아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대화를 하더라도 정작 서로의 상태를 살피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때 차 한 잔이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짧은 시 한 편이 우리의 마음을 보여준다. 찻잔을 앞에 두고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내기는 참 어렵다. 나도 모르게 숨이 깊어지고, 입꼬리에 미소가 지어진다. 조금 더 부드럽고 향기로운 말을 하려고 마음속으로 말을 고르고 또 고른다. 찻물 한 잔의 힘은 이렇게나 대단하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에게 묻는다. 컨디션은 어떤지, 속은 편안한지, 차를 마시기에 좋은 상태인지 묻고 대답하면서 스스로의 상태와 상대방의 안부를 동시에 확인한다. 매일 차 한 잔을 나누는 우리 부부가 이 시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밤, 우리가 마실 차 맛은 어떨까? 그 차를 마시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해 있을지 궁금하다. 종일 몸과 마음을 살피며 지내다가 무탈히 퇴근해야겠다. 그래야 서로가 마주 보고 여유롭게 차 맛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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