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컨디션은 어때? 차 잘 들어갈 거 같나?
우리는 차를 참 잘 마신다. 서로의 컨디션만 좋다면! 그래서 우리 부부는 차를 마시기 전 서로의 컨디션을 살핀다. 사실 차 마시기에 가장 좋은 때는 이른 새벽이다. 완벽한 공복 상태일 때 뜨겁게 우려낸 보이숙차의 노련함은 우리를 편안하게 감싸 안는다. 나는 식도염 환자이지만, 요즘 많이 좋아진 상태라 오래된 보이숙차는 빈 속에 마셔도 문제없다. 차가 잘 들어갈 것 같냐는 물음은 서로를 살피는 첫 질문인 셈이다.
언제, 어떤 차를 마시는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차를 마시는 각자의 상태가 중요한 탓이다. 아무리 좋은 차를 값비싼 차호에 우려내도 차를 마시는 사람의 몸 상태가 별로면 차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차를 마시기 직전, 과식했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중요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차를 마셔서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차라리 차 한 잔을 포기하고 쉬는 게 나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마시는 차 한 잔은 그저 차맛을 즐기기 위함만은 아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대화를 하더라도 정작 서로의 상태를 살피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때 차 한 잔이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짧은 시 한 편이 우리의 마음을 보여준다. 찻잔을 앞에 두고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내기는 참 어렵다. 나도 모르게 숨이 깊어지고, 입꼬리에 미소가 지어진다. 조금 더 부드럽고 향기로운 말을 하려고 마음속으로 말을 고르고 또 고른다. 찻물 한 잔의 힘은 이렇게나 대단하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에게 묻는다. 컨디션은 어떤지, 속은 편안한지, 차를 마시기에 좋은 상태인지 묻고 대답하면서 스스로의 상태와 상대방의 안부를 동시에 확인한다. 매일 차 한 잔을 나누는 우리 부부가 이 시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밤, 우리가 마실 차 맛은 어떨까? 그 차를 마시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해 있을지 궁금하다. 종일 몸과 마음을 살피며 지내다가 무탈히 퇴근해야겠다. 그래야 서로가 마주 보고 여유롭게 차 맛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