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집에 홀로 남는다. 주부의 아침 일상은 생각보다 분주하다. 청소와 빨래, 정리정돈 등등 할 일을 다해놓아야 놀아도 마음이 편하다. 출근할 때보다 멍 때리는 시간이 몇 배로 늘어났지만 확실히 달라진 게 있다. 바로 전화가 울리는 횟수다.
통화를 하다가도 걸려온 전화 때문에 급히 마무리하고 또 다른 전화를 받았던 그때. 바빠도 좋았던 게 아닐까.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을 가져가야 할 정도였다. 단단히 일에 미쳐있었던 건 잊히기 싫었던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바빠서 힘들다고 하면서도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에 미쳐있었나 싶다.
요즘 전화도 잘 안 와요.
당연하지, 그렇게 잊히는 거야.
남편의 전화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울린다. 보통 전화를 걸어오는 쪽이 부탁하는 입장인데도 업무 특성상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예전엔 안타까워 보였는데, 이제는 부럽다. 여기저기서 찾고, 부탁하는 일들을 전화 통화만으로도 척척 해내는 남편을 보면서 말했다. 전화도 잘 안 온다고. 그랬더니 남편은 쿨하게 답한다. 당연한 일이라고. 일을 쉬고 있으니 그렇게 잊히는 거라고 말이다.
이상하게 그런 말들이 서운하게 들린다. 잊힌다는 말이 이렇게나 슬펐던가. 그러고 보니 요즘 나의 스마트폰 통화목록에는 거의 가족뿐이다. 심지어 스팸 전화도 잘 오지 않는다. 보험 가입하라, 대출받으라는 전화가 그리워질 줄이야.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기도 하지만 요즘 '어른과의 대화'가 그립다. 이런 기분은 아이를 낳고 회사에 복귀하기 전까지 숱하게 느꼈던 감정인데 말이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고작 한 달이 지났을 뿐이다. 세상에서는 잊혀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나를 지치지도 않고 불러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아이들이다. 예전보다 '엄마!'를 부르는 횟수가 급증했다. 엄마에게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눈치챈 것이다. 다행이다.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어서다.
엄마, 회사 안 나가니 좋으세요? 엄마가 쉬셔서 저도 좋아요.
중1 큰 아이가 굵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엄마 손을 잡아주고, 엄마 품에 안기는 아들이다. 엄마가 바쁘면 집에 와서 짜증을 내고 누워만 있던 모습에 익숙했을 아이다. 이 말을 듣고 미안해졌다. 응, 좋아. 너희들과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아이는 금세 웃었다. 조금만 있으면 턱수염이 시커멓게 자랄 이 아이에게 위로를 받는 엄마의 나약함이라니.
그래, 좀 잊히면 어떤가. 회사를 다니든 안 다니든, 일을 하든 안 하든 나는 이 아이들의 엄마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 아이들이 부르면 냉큼 달려가 꽉 안아줘 버려야겠다. 언제까지 엄마를 찾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을 때 감사히 달려가는 내가 돼 보련다. 한 달이 또 지나면 나는 더 단단해지고 깊어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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