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강의 프로그램이 열린다. 참가비는 없다. 평소엔 꿈도 못 꿨을 시간이지만 육아휴직을 한 덕분에 마음껏 누린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도서관에 가기만 하면 되니 참여도 편하다.
지난주에 시작한 글쓰기 강의에 참여했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썼다는 에세이스트 저자가 '글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막연하기만 했기에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또, 나의 글은 에세이로서 얼마나 값어치가 있을 지도 궁금했다.
첫 수업 시간,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각자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더니, 순간 강사는 안타까워하며 말을 보탰다. 아직도 책을 안 썼냐며, 이미 늦었다고 말이다.
출처 : pixabay.com
그러게요, 제가 용기가 없었네요. 늦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알았는데, 소심해졌다. 강사의 말에 바보같이 답하고 말았다. (그때 난 정말 바보처럼 보였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회사를 벗어나면 조금 소심해지는 나다. 그날도 분명 나는 위축됐다.
솔직히 강사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어느 순간 포기해 버린 게 사실이다. 누구나 책을 쓰는 시대이지만, 그 '누구나'에 나는 없다. 가끔 누군가 "책 안 쓰냐"라고 물어오면, "아직 준비가 안 돼서요."라며 말을 돌리곤 했으니 말이다.
자기소개 이후로 수업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나 읽기 쉽게 글을 쓰라는 말만 기억난다. 직접 책을 내본 저자의 꿀팁은 분명 배울 만한 것이니 집중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난 "이미 늦었다"라는 말에 꽂히고 말았다. 정말 늦었을까? 아직 내겐 기회가 남아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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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값지다. 후회는 명료하게 해 준다. 후회는 가르침을 준다. 제대로만 하면 곤경에 빠질 이유가 없다. 후회는 우리를 고양시킬 수 있다.
- 다니엘 핑크, <후회의 재발견> 중에서
지난달에 북클럽에서 회원들과 함께 읽은 책 <후회의 재발견>에서 건진 문장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이미 늦었다는 말을 듣고 떠올릴 수 있었다. 후회는 나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이미 늦었다고 해도 아직 시간이 있다고 믿는다. 이미 늦었다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절대 하지도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다음에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답하겠다.
늦었는지 아닌지 아직 모를 일이잖아요. 제게도 기회가 있다고 믿어요.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했다. 1년의 육아휴직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1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도 확신할 수 없지 않나.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면, 그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믿고 싶다. 아직, 내게는 기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