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는 6살이다.
아이는 엄마가 그립다.
아니, 미운건지도 모른다.
4살 터울 동생이 태어나면서 지영이네는 같은 층, 방이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한다.
이사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 세간살이라고는 몇 개 안 되는 식기들과 4단 서랍장뿐이다.
아빠가 서울 전자상가에서 사 온 TV가 지켜야 할 유일한 전자제품이다.
마지막으로 몸뚱이만 들고 나오면 되는 이사였다.
그해 여름은 몹시도 머릿니가 많았다.
예외 없이 지영이의 머릿속에도 침범한 이를 잡기 위해 이발사인 아빠는 문 앞에 지영이를 세워, 분홍색 보자기로 온몸을 휘감아 놓았다.
'싹둑싹둑' 아빠의 가위질 소리가 날 때마다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잔뜩 심술 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온 동네가 지영이의 머릿니 소식을 알게 되었고, 지영이와 동생은 사내아이가 돼 버렸다.
지영이의 머릿니가 옮겨가서 엄마가 화가 많이 났던 것일까?
엄마는 마실을 나가는 일이 많다.
동네 이모들과 모여 앉아 수다 떨기 위함인데, 그럴 땐 동생은 영락없이 지영이 차지다.
돌본다기보단 같이 TV를 보는 것이 전부다.
그 저녁도 지영이는 엄마가 마실을 나간 줄 알았다.
지영이와 동생에게 저녁을 먹인 후
"지영아,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엄마의 차림새가 다르다는 걸 지영이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온 집엔 지영이와 동생뿐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항상 집에 있었는데, 그날은 한참을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는다.
"지영아, 이모들 집에 좀 다녀와봐! 엄마 어디 있나 찾아보자!"
엄마를 찾아 나가는 아이는 갑자기 슬퍼진다. 불안해진다.
어느 집에도 엄마가 없다.
다음날 아침, 그다음 날 아침도 엄마는 집에 없다.
지영이와 동생이 걱정되었을 테지만, 남의 집 일을 하는 아빠는 출근할 수밖에 없었고,
그 하루 아이들의 밥은 이웃 뚱뚱이 할머니 몫이었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무서워 지영이는 밥도 안 먹고, 말도 하지 않는다.
동생은 무엇이 불편한지, 아님 저도 불안함을 느끼는지 계속 보챈다.
평소엔 남들에게 잘도 안기면서 그날은 지영이 옆에 딱 붙어 있다.
지영이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한참 동안 엄마는 부재중이었고, 아이는 이제 그것이 익숙해진다. 동생도 그런 것인지 울지도 않는다.
울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일 수도.
하지만, 아빠는 아닌 것 같다.
웃는 모습이 사라지고, 밥도 잘 먹지 않는다. 가끔은 화도 내고, 가끔은 술도 마시고
아침이면 아빠는 동생을 할머니네 맡기고 출근한다.
지영이는 집에 있기도 하고, 친구들 집을 다니기도 하면서 잊히지 않는 엄마를 기다린다.
벗어두고 간 엄마의 옷 냄새를 맡으면서.
엄마 없는 집은 엉망이다.
발로 대충 밀어놓은 이부자리는 방의 반을 차지하고, 음식물이 붙어 굳어있는 그릇,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쓰레기들
제대로 씻지 못하니 지영이와 동생은 딱! 엄마 없는 아이들 꼴이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었고, 시원한 바람이 불던 날 저녁
어설픈 설거지를 해 놓고 칭찬을 기다리던 지영이에게 돌아온 건 아빠의 무서운 얼굴과 화난 목소리다.
"아기나 잘 보라고, 누가 너보고 설거지하래?"
낮 시간은 이모들이 동생을 돌봐 주었지만, 저녁이 되면 오로지 동생에게는 지영이 뿐이다.
그날 동생이 옷에 똥을 싼 건지, 오줌을 싼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의 옷을 갈아입히던 아빠는
화가 많이 나 있다. 동생의 엉덩이가 빨갛다. 지영이는 서럽게 운다.
있지도 않은 "엄마"를 부르며.
화난 아빠가 무서워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신발 벗는 디딤돌 위에 얼어 있다.
지영이도 아직 돌봄을 받아야 할 작은 아이인걸 아빠가 잠깐 잊었나 보다.
그날 이후, 아빠는 쉬는 날이면 동생을 안고 엄마를 찾으러 다녔다.
서울, 광주, 목포 외가 친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하지만 언제나 돌아온 건 아빠와 동생 둘 뿐이었다.
목포로 엄마를 찾으러 갔다 돌아온 그 밤!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우시며, 지영이에게 말한다.
"지영아, 우리끼리 잘 살자"
"엄마가 나 싫대?" 묻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밤 아빠는 한참을 그렇게 소리 없이 울었다.
바둑이 이모가 급히 지영이를 찾는다.
이모네 집은 전화기가 있는 몇 안 되는 집이다.
"지영아, 빨리 전화받아봐. 엄마야"
이모집 문 기둥에 기대어 서서 잠시 망설인다.
귓가에 스치는 아빠의 말 '우리끼리 잘 살자'
엄마 전화를 받으면 아빠도 화가 나서 사라질 것 같아 무서웠다.
전화를 받지 않고 제 집으로 돌아와 울고 있는 지영이를 바둑이 이모가 쫓아와 혼낸다.
"어린것이 독하네. 엄마 전화 왜 안 받아? 엄마가 너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잖아"
'혼낼 사람이 나인가? 엄마 아닐까?'
지영이는 이모를 쳐다보지도 않고, 뒤 돌아 생각한다.
바둑이 이모는 엄마 편이다.
지영이는 바둑이 이모가 밉다. 그렇게 예뻐하던 이모네 바둑이도 미워졌다.
놀자고 달려오는 바둑이를 소심하게 내민 오른발로 슬쩍 밀어낸다.
"안 놀아."
전화 일이 있고 며칠 뒤, 서울 외 사촌 언니가 왔다.
언니와 놀러 가자며 동생은 할머니네 맡기고 지영이만 데리고 어디론가 간다.
가는 도중 언니는 묻는다.
" 엄마 안 보고 싶어?"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금세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지만,
아빠한테 들킬까 봐 울지 못하고 참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대답을 하면 울어버릴 것 같아 입술에 힘을 주어 다물고는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짧게
버스를 타고 도착해 내린 곳은 전철역
매표소 앞에 엄마가 서 있다.
빨간 점이 찍혀있는 짙은 밤색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단정하게 말아 올린 엄마가 그곳에 서 있다.
지영이는 엄마를 부르지도 달려가 안기지도 않고 멀찍이서 어색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엄마 또한 그렇다.
그저 엄마가 다시 저 기차를 타고 사라지진 않을까 무섭다.
아빠는 퇴근하는 저녁이면 항상 설탕 바른 핫도그 두 개를 사 가지고 온다. 저녁인 것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온 지영이는 아빠를 보고 그제야 눈물을 터뜨린다.
기름이 배어 나와 군데군데 짙은 얼룩이 묻은 갈색 종이봉투 입구를 모아 오른손에 꽉 움켜쥐고 ,
없어진 지영이 때문에 놀라 문 앞에 서 있던 아빠에게 달려가 안긴다.
그 저녁 아빠. 엄마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와 한참을 떨어져 있던 동생은 엄마를 잊지 않았는지 엄마에게 가 안긴다.
잠에서 깨어나면 엄마가 다시 사라져 버릴까 봐 지영이는 잠들지 않으려고 애쓴다.
언제 잠들었는지 자다 깬 지영이는 화들짝 놀라며 엄마부터 찾는다.
엄마는 한숨도 못 잤는지 어제 입은 옷 그대로 앉은자리 또한 그대로다.
"지영아, 밥 줄까?
엄마가 돌아온 날부터 지영이에겐 습관이 하나 생긴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온 집안을 다 뒤지는 습관
엄마가 다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 불안함이 언제 사라졌는지는 지영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