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우리 동네 아이들은 뚱뚱이 할아버지의 호통에 공용 화장실옆 공터로 쫓겨나고 있었다. 같은 공터여도 아이들은 화장실 옆 그곳에서 노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아마 슬며시 콧속을 침범하는 냄새 때문일지도 모른다. 뭘 하고 놀까? 를 서로서로 얘기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말한다.
"우리 성찬이네 이사 간 집 가보자 성찬이가 아무 때나 놀러 오라고 했어"
성찬이는 이곳에서 살다 이사 간 한 살 위 오빠였다.
동네 아이들은 남자 여자 나이와 상관없이 몰려다니며 놀았기 때문에 한 살 차이정도는 모두 친구다.
하지만, 지영이는 성찬 오빠와 친하지 않다. 얼굴만아는 정도.
더욱이 같이 놀던 다섯 명의 아이들 중에 지영이만 1학년이아니다.
아이들은 서둘러 건물을 벗어나고, 4차선 신호등을 세 번이나 건너 낯선 동네로 들어간다.
뛰는 듯 걷는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놀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한 껏 신이 나 있었다.
1학년 언니 오빠들을 따라가느라 지영이는 애를 쓴다.
그곳은 지영이가 살고 있는 건물처럼 높은 건물은 없고, 낮은 집들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성찬 오빠네 집은 축구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빈터 주변에 있었다. 도착하자 경철이가 성찬오빠를 부른다. 성찬이는 반색을 하며 문을 열고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 나온다.
"와 너희들 왔어? 어떻게 왔어?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
쭈뼛쭈뼛 남자아이들을 따라 들어가려는데, 성찬이가 지영이를 가로막는다.
"안돼, 넌 1학년이 아니어서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없어."
1학년이 아니라서 안된단다. 그래서 여기서 놀 수가 없단다.
당황한 채로 걸음을 멈추고, 같이 온 아이들을 쳐다보지만 아무도 지영이 편을 들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희정언니가 난처한 표정으로
"지영이도 같이 놀면 안 돼?"
하고 묻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지영아, 집 가는 길 알지?"
지영이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잘 모른다. 그저 언니, 오빠들만 졸졸 따라왔기 때문에 오는 길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집 가는 길을 모른다고 말했으면 좋으련만, 들어가게 해 달라고 조르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린것이 무슨 자존심인지 토라진 듯 고개를 돌리고
"나 갈래, 안 놀아줘도 돼"
쌀쌀맞게 말한다. 무리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러워졌다. 그곳에 서서 우물쭈물하는 게 싫었다. 당당하게 뒤 돌아왔지만, 한 걸음 걷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길을 모른다.
골목골목 모든 길이 다 지영이가 왔던 길과 똑같아 보인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나 붙들고 '집 좀 찾아주세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없다.
지영이네 집엔 전화도 없고, 동네 이모네 전화번호도 모른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 온몸에 힘이 빠져 걷기가 힘들다.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서 당황스럽다. 가을임에도땀이 난다. 언니, 오빠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가고 싶지만 역시 그 길도 모른다.
'그냥 다 놀고 나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릴걸'
한참을 울어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된 채로 골목을 방황하고 있을 때,하얀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고 한 손에책을 든 언니가 뒤에서 지영이를 부른다.
"얘, 너 길 잃었어"
지영이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본다.
"언니랑 가자. 언니가 엄마 찾아줄게"
기댈 곳이 없다. 언니 손에 이끌려 간 곳은 파출소였다. 언니는 나를 그곳에 두고 유유히 사라졌다. 경찰 아저씨들이 무서워 차라리 언니를 따라가고 싶었다. 경찰 아저씨들이 앉아 있는 곳 뒤로 문 하나가 있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2층 침대가 양 옆 벽으로 두 개 있었다. 지영이를 그중 한 곳에 앉히고 여자 경찰이 와 지영이에게 묻는다.
"이름이 뭐야? 니 사는 동네 주소 알아? 전화번호는? 엄마, 아빠 이름은?"
지영이는 이름하나 달랑 말하고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이름조차도 생각나지 않았다. 지영이가 사는 건물은 00 시장이었는데, 그것 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한참을 울던 지영이는 잠시 잠이 들었다. 무섭게 생긴 경찰 아저씨가 지영이를 깨운다.
"야, 너 집 안 갈 거야? 잘 생각해 봐. 너 고아된다"
분위기에 눌려서 울지도 못하다가 고아라는 소리에 울음이 터져버린다. 7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영이는 낮에 이곳에 왔는데, 밖을 보니 어두워지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덜덜 떨린다. 집을 잃어버렸다. 무서운 경찰 아저씨는 잠시 나갔다가 빵과 우유를 들고 들어오신다.
"이거 먹어"
지영이는 먹을 수 없다.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울먹임으로 우유 한 모금도 넘길 수 없다.
빵 한 조각을 한참 씹어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 목에 힘을 잔뜩 주어 억지로 삼킨다.
먹기를 포기하고 양손에 빵과 우유를 들고 그저 앉아 있다. 배가 고플 리 없지 않은가.
무서운 아저씨가 나가고, 조금 있으니 더 어려 보이는 키 큰 경찰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지영아. 아저씨랑 밖에 나가보자."
싫다. 좋다. 말도 하지 못하고 따라나선다. 파출소 앞으로 지영이를 데리고 나간 경찰 아저씨는 지영이에게 물었다. 손가락으로 왼쪽 오른쪽을 가리키며
"어느쪽으로 가볼까? 아저씨랑 한 번 걸어가 보자."
"밥 안 먹는 손"이라고 말하고 손을 잡고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걷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지영이가 여름 성경학교를 다니던 교회가 보인다. 머릿속이 환해지고. 눈이 맑아진다.
"아저씨 저 이제 여기부터는 길 알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마음이 놓이고 나니 이제부터는 다른 걱정이 밀려온다. 경찰 아저씨랑 같이 가면 엄마한테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엄마 허락도 없이 멀리 갔기 때문이다.
"안 돼, 엄마 만날 때까지 아저씨가 데려다줘야 해"
저 멀리 우리 건물이 보인다. 뭔가를 이렇게 반가워해 본 적이 있었을까? 지영이는 콩콩 뛰면서
"저기요. 저기 저 시장 건물이 우리 집이에요." 지영이는 다시 눈물이 난다. 경찰 아저씨와 어둡고 좁은 건물 입구에 들어서니 온몸에 힘이 다시 쫙 빠진다. 2층 계단으로 올라서니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지영아. 지영아 어디서 놀고 있냐? 빨리 들어와!"
3층 난간에서 지영이를 부르는 엄마가 경찰 아저씨의 손을 잡고 올라오는 나를 보고 놀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