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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Oct 30. 2024

별거 아닌  인생

지금이라도

'바스락', '바사삭'

새가 내려앉은 줄 알았다.

바스락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지금껏 내게는 먼지 내뿜으며 인도 옆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만 들렸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가만히 들어보니  발치에서도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부딪히며 '바스락', 내 발에 밟혀 으스러지며 '빠스락' 소리를 내며 제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마른 나뭇잎이 몸에서 떨어지며. 다시 제 몸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앞만 보며 걷던 나를 멈춰 세운다. 계절이 바뀌어 가서 이렇게 스러져 가고 있다고 마른 나뭇잎은 줄곧 얘기하고 있었을 테다.



나는 항상 초초하고 불안해한다.

그렇다고 계획을 잘 세우고 그 초조와 불안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근면한 사람도 아니다.

불만은 많고 게으른 사람. 남이 해주길 기대하며 그 자리에서 그렇게 불안과 항상 함께한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불안해한 적도 있으니 이건 분명 약 없는 병이지 싶다.


그러니 삶에 감사함을 갖는다는 것은 내겐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인 건지, 그동안 한 여러 가지 경험이  내게 가르침을 준건지 모르겠지만, 오늘 이 아침의 평온함이 문득 감사해졌다.


라디오 방송에서 남자 MC가 말한다.

"왠지 발랄하면 안 될 것 같고 약간 우울해지는 그런 가을이 왔네요"

'나 가을 타나 봐'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나 혼자 '피식'  웃었다. 나와 같이 사는 남자도 요즘 맘이 저 MC와 같은 것 같아서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가볍게 날린다. 그 스침이 기분을 들뜨게 했던 모양이다.

이 짧은 가을이 나를 가볍게 한다.

지하철을 타고 현장학습 가는 초등학생들의 어수선함이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게 한다.

청바지에 운동화, 하얀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긴 머리를 펄썩거리며 걷는 청춘의 꾸미지 않은 모습이 흐뭇하다.


보조도구를 이용하지 않고도 한두 시간은 거뜬히 걷는 두 다리에 감사하다.

리딩 글라스 없이는 책 읽기가 불편한 나이가 되었지만 형형 색색의 계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에 또한, 활용하기 나름인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다. 


가끔은 내가 보아온 계절보다 볼 계절의 횟수가 더  적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50의 나날들도 이제 겨우 60일 남았다는 것이 새삼 실감 났다. 아직 해 보지 않은 것이 많으니 시간이 아까워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다.


집과 회사만 쳇바퀴 도는 '집순이'타이틀을 떼고 싶어 남편에게 '혼자 여행'을 선언했다. 기차표 하나 제대로 끊어본 적 없고. 자차 운전으로는 한 시간 거리가 고작이었던 내게 남편은 말한다.

"해봐. 무서워서 어디 할 수 있겠어?"

예전의 나였다면 남편 말이 맞았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처음으로 1박 2일 혼자 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잡았다. 혼자 여행 준비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이게 뭐라고 전에는 엄두도 못 내고 겁을 먹었을까. 첫걸음은 1박 2일이지만 나의 나중 걸음은 한 달 살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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