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코앞인데 팔월의 열기는 미련이 남았는지 떠날 생각 않고 미적대는 날 평창에 왔다. 대략 네 시간의 여유가 있다. 봉평이 가깝다. 이효석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곳, 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쓰인 현수막을 작년에 보았다. 그땐 일정이 빠듯하여 아쉬움만 떨궈둔 채 돌아왔었다. 오늘은 빈 시간이 무려 네 시간이다. 회의 시간까지 머물 곳도 없다. 입장 불가, 점심식사도 불가라니, 같이 온 일행의 난처한 표정을 먹잇감인 듯 낚아챘다.
"근처 봉평에 가면 메밀꽃 축제 한대요."
뭘 할지 난감해하는 일행에게 빌드업 멘트를 날렸다.
"그래요?"
메마른 목소리의 대꾸는 감동이 절개되었다. 메밀꽃은 제주에서 봄, 가을로 흔하게 보는 풍경이다. 대답이 시큰둥한 이유다. 메밀꽃의 대명사인 봉평보다 전국 생산량 1위가 제주이니 그럴 수밖에. 처녀 가슴 같은 봉긋한 오름을 배경으로 들판과 밭담 사이에 하얗게 흐드러진 메밀꽃이 바람에 살랑이면 말보다 감탄사가 먼저 나온다. 그런 느낌은 관광객의 감성이다. 습관처럼 보는 풍경이라면 감각이 무디어져 일상적이라 치부하는 것이다.
자극적이진 않더라도 움직일만한 동기를 던져야 한다. 어차피 할 일도 마땅히 없으니 약간의 명분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봉평에 가면 이효석 문학관이 있어요."
"마침 메밀꽃 축제도 열리고 있다네요"
(이효석이 누구더라... 들어본 듯 낯익은 이름인데...)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뒤지는 지인에게 설명을 덧붙인다.
"메밀꽃 필 무렵이요 이효석의 단편소설 그 내용이 장돌뱅이 형이 오랜만에 집에 와 문을 열었는데 남동생과 아내가 옷이 좀 벗어지고 땀 흘리고 있는 장면을 보고 말없이 떠나버리는 형의 내용인데 사실 쥐 잡다 벌어진 오해라는 소설이요."
"아 그래요 읽은 지 까마득해서 생각이 안 나네요."
이런이런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나중에 생각해 보니 배따라기 내용인 것 같다. 하여튼 근대소설의 백미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문학관을 지척에 두고서 안 가본다는 것은 두고두고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점심도 먹어야 하잖아요."
"봉평 메밀 막국수도 유명한데..."
"그러지요 뭐"
"(문학관) 한 번 둘러보고 점심도 먹으러 갑시다."
(앗싸)
처음 가는 이효석문학관이다. 현수막에 쓰인 대로 택시 기사는 봉평에 가면 이효석 문학관 주위로 메밀꽃 축제가 한 달 동안 열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