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온 지 약 1년 뒤에 자가주택을 대출 없이 구매하고, 일본 병원의 일반사무직업무 외에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저만이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처리해 가며경험을 쌓아 실적을 만들다 보니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수년사이에 인생의 단맛만이 아닌 쓴맛도 함께 경험을 했습니다. 실수나 실패도 경험이라고 하지만,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인생과 주식시장은 쭉 우상향만 하지 않는다는 것만 놓고 보면 판박이 같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보아가며 몇 년간 일을 하다가 저는 제 인생에 첫 이직이자 마지막 이직을 결심하게 됩니다.
첫 직장인 병원의 경우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교류를 포함하면 약 9년간의 인연이 있었던 곳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자신의 일과 이곳에서의 자신의 미래설계도 어느 정도 해놓았을 정도로 직장과 일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이직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었습니다.
이 이직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게 만든 것은 단지, '배신감'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저는 결국 이해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민 끝에이직을결심하여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협상 전에 선제적으로 월급을 꽤많이 올려주며협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이미 떠날 결심을 한 상태였고, 이미 새로 이적할 곳도 결정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퇴사 후 저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약 3주간 동일본여행길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3주나 여행을 마음 놓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쌓여있던 유급휴가와 이직이 결정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홋카이도를 시작으로 배를 타고 쓰가루 해협을 건너일본의 혼슈 최북단인 아오모리현에 건너가 동일본의 많은 명소를 돌며 오사카까지 돌아오는 여행을 통해 많은 추억도 남기기도 했지만, 오사카에 가까워질수록 마음 한편에는 새로운 직장에 대한 걱정도 커져갔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회인이 되고 나서의 여행의 끝에는 항상 직장으로 복귀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두 번째 직장도 의료계 쪽으로 그곳의 의료법인 클리닉의 원장님과는 의료 세미나등을 통해 알고 지내던 분이었습니다.제가이직처를고민하고 있을 때,원장님께서는새롭게 한일교류사업을 생각하고 있고,사무관리직도 모집 중인 상황이니 이직을 생각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오셨습니다.
시기적으로 너무 좋았고, 높은 연봉과 좋은 조건까지제시받았기에 저는 이직 또한 행운과 타이밍의 영역이라고믿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에서는 3년 차 즈음부터 한 달이 멀다 하고 출장으로 한국과 일본은 물론 일본의 지역도시를 오고 가고 했었는데, 이직을 하고 나서는 이직협상 당시에 이야기했었던 한일교류사업은 퇴사할 때까지 끝끝내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병원일에 대한 보람보다 한일교류사업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쌓여갔고 갈수록 체력적, 정신적 여유도 없어졌습니다.
저는 남의 말을 듣고 이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직을 해보고 느낀 점은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과연봉보다 일에 대한 보람과 직장의 환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정말 이직이라는 것도 행운과 타이밍이라고 믿었지만, 이 결정이 인생의 하락기가시작되는 선택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고, 여기에 개인 가정사까지 겹쳐지며하락에가속도까지 붙어 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