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닮아가기
나는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나중에 커서 꼭, 엄마 호강시켜 줄게
나보다 여섯 살 위의 장남은 어릴 때 엄마에게 종종 이렇게 얘기했다.
집안은 가난했고 무엇이든 늘 부족하고 모자랐다.
아버지는 무능했으며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언제나 자신의 안녕이 우선이었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형제들 중 유일하게 관대한 대접을 받았던 그조차도 그런 아버지를 존중하지 않았다.
아무튼 엄마로서는 이보다 더 뿌듯하고 설레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장남은 나를 앉혀놓고 다짐하듯 당부하기도 했다
우린 아빠처럼 살면 안돼
알겠지?
장남의 인생이 그나마 빛을 발했던 건 1996년 결혼하던 때를 즈음한 시기일 것이다. 당시 그는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압구정에서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했었다. 자세한 내역까지야 알 수 없지만 어떤 영상 촬영물 같은 것들을 앨범이나 플로피 디스켓 대신 CD에 담아 제품화했던 걸로 기억한다.
일찌감치 장남에게 생계를 맡기고 뒷방으로 물러 난 부모님은 마치 그가 대단히 전도유망한 청년사업가라도 되는 양 한없이 들떠 보였다. 엄마는 장남의 연이은 대학 입시 실패로 구겨졌던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라도 하듯이 입에 익숙지 않은 컴퓨터 관련용어까지 섞어가며 장남의 사업을 소문내고 자랑하기를 일삼았다. 그리고 이버지는 장남의 사업을 위해 유일한 재산인 당시 살던 집의 등기권리증과 인감까지 기꺼이 내어주어 자금 운용에 보탬이 되길 바랐다.
내 결혼 때 일체의 금전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양가가 처음 만나는 상견례조차 친구와의 약속을 핑계로 불참했던 사실과 비교해 보면 당신이 장남에게 갖고 있는 각별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장남의 사업으로 인해 막상 살림이 나아졌다거나 큰 목돈을 쥐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돌아와 보니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집안의 가장이 장남으로 바뀌어 있었고 내가 부모님과 사는 집에 저들이 들어와 사는 건지, 내가 졸지에 그들 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된 건지 도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대충 7년의 세월을 그들과 함께 살았던 내 기억에도 번듯한 사업가 행세를 하며 허세에 가득 차 있던 장남의 모습 말고는 그저 좁은 아파트에서 복잡 복잡 얽혀 지내던 일들만 남아있다.
언젠가 장남에게 뭔가를 부탁받고 그의 사무실을 처음 가본 적이 있는데 직원 수라고 해 봐야 5,6명이 고작인 소규모 사업장을 보며 엄마와 아버지의 기대에 비해 여기도 뭐 특별할 건 없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기간으로 보자면 한 5,6년 정도나 유지됐을까.
결국 장남의 회사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폐업에 이르렀다. 엄마에게 듣기로는 이미 그 얼마 전부터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빠듯한 살림이 이어지고 있었다고 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다음 스텝을 위한 어느 정도의 공백은 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당장 장남이 무직 신세라 해도 크게 우려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조만간 다른 무언가를 하던 취직을 하던 우선 생계유지부터 해나갈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자그마치 20여 년이 지난 근래까지 장남은 별다른 직업 한번 가져 본 일 없이 형수가 운영하는 동네 미술학원의 수입에 의존해 살고 있다.
중간중간 어딘가의 월급쟁이로 일하는 듯도 보였으나 몇 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했고 그나마도 언제부턴가 흐지부지된 채 집 안에만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갔다.
가끔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현재에 대한 각성이나 앞날에 대한 계획은 커녕 아직도 그 옛날 "사장님" 소리 듣던 과거나 들먹이며 허우적거리는 게 보였다.
어려서부터 어떤 통제도 없이 제멋대로 살아온 기질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어서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잦았고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예민하고 포악하게 굴었다.
장남이 그렇게 시간을 소비하는 사이 그들의 생활고는 일상이 돼버렸다. 형수가 벌어오는 수입만으론 네 명의 아이를 키우기에도 역부족이었고 서서히 늘어 난 빚 때문에 살고 있던 아파트마저 경매로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신용불량, 회생, 파산.. 이런 단어들이 그들의 집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형수와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독선적인 가장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때마침 사춘기에 접어들던 첫째, 둘째 조카의 얼굴에는 나날이 구김살이 드리워졌고 어릴 때 나한테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을 압박하고 손찌검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아이들 세대에까지 대물림하고 있는 장남의 행태가 너무나 잔혹하게 다가왔고 오버랩되듯 익숙한 기시감이 내 입맛을 쓰게 만들었다.
장남은 어느새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거였다.
가족을 온전히 지키지도 부양하지도 못했고 그들로부터 존중받는 것조차 실패했다.
엄마는 아버지와의 끝나지 않는 불화에 더해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장남과의 관계에까지 금이 가고 고단한 손자 양육만이 당신의 현실로 남겨지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첫째와 둘째 조카도 스무 살이 되기가 무섭게 차례차례 집을 떠났다.
나는 장남에게서 내 아버지를 보았고 조카들의 도피와도 같은 독립을 바라보며 어린 날의 좌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비극의 결말은 어쩌면 예정된 대로 흘러온 것일지도 모른다.
장남의 결심과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엄마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을 호강도 덩달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마주 보며 닮아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