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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향기 Sep 16. 2024

장남이라는 이름의 괴물 3

기묘한 동거


엄마가 혼자 살기를 결심하고 나간 후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그 집에 있다.

장남네 셋째 아이가 올해 지방 어느 대학에 입학했다고 하니 이제 그 집에 남은 사람은 장남 부부와 그들의 막내아들, 그리고 아버지까지 총 네 명이 전부다.




자신에게 상의도 없이 함께 살던 집을 나갔다는 사실에 분노한 장남은 그 길로 엄마와의 연락을 거의 끊다시피 했고 엄마의 암 수술 당시 병원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혼자 살기 시작한 엄마를 챙기거나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아이들이 찾아가는 것도 막았다.



나로서는 무엇이 그만큼의 울화로까지 작용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아마도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오로지 아버지에게로만 돌리고 있을 것임은 확실했다.


물론 장남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런 그에게 혼자 남은 아버지가 곱게 보였을 리 없었다.

엄마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만난 형수는 역시나 아버지와 장남이 평소에 말을 섞기는커녕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데면데면하게 지낸 지 오래이며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일도 드물다고 했다.

장남은 아버지를 무시하고 철저히 외면하는 방식으로 본인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을 테고 아버지는 그런 장남의 행동을 별 반응 없이 삭이며 받아넘기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대충 얘기만 들어도 어떤 상황인지가 그려질 만큼 익숙한 소식들이었다.










형수를 만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아버지와 통화한 일이 있었다.

일상적인 안부 후에 혹시 필요한 게 있는지 물었더니 케이블 TV를 설치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료한 시간에 TV라도 보려고 해도 당장은 방영되는 채널이 몇 개 되지 않더라는 거였다.

나는 그 동네의 케이블 방송을 찾아서 바로 설치할 수 있도록 시간을 예약한 후 아버지에게 알렸다.



그런데 두어 시간 있다가 걸려 온 기사님의 전화는 뜻밖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신청하신 주소지로 왔는데요,
거주하시는 분이 거부하셔서 설치가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저한테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네요



당황스러웠을 기사님께 사과부터 하고 나서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니 형이 못하게 해서 그냥 돌아갔어
매일 집에서 TV나 보려고 그러냐고 성질을 낸다
바둑 좀 볼까 해서 그런 건데..



이럴 경우 보통은 나이 많은 노인이 소일거리 삼아 TV 좀 보겠다는데 굳이 저럴 필요까지 있겠냐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말기 쉽지만 장남에겐 그것을 넘어 선 병적인 집요함이 있다.

그 옛날 어린 나에게도 그랬듯이 누군가에게 화가 나서 분풀이를 해야 할 때는 본질을 넘어 아주 사소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연관 지어가며 본인의 성에 찰 때까지 괴롭힌 후에야 잠잠해 졌다.


사실 아버지가 방 안에서 바둑을 보던 드라마를 보던 하루에 열 시간 넘게 TV 앞에 앉아있던, 그건 장남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제와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도 아닐테고 거실로 나오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이 마주칠 일도 없다.

케이블 TV 요금도 당연히 내가 지불할 계획이었다.

장남이 트집 잡는 것은 TV 시청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됐든지 간에 이버지의 불편함이 해소되는 것이 싫고 바라는 걸 얻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그래서 그걸 못하게끔 막는 것이 아버지를 괴롭히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는 거였다.










아버지가 처한 현실을 보고 있자면

인간적인 측은함이 아예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당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당시 따로 신혼집을 구하기엔 자금이 부족했던 장남은 그 필요에 따라 부모와의 합가를 결정해서 지금껏 살아온 것이고, 오래전부터 당연시해 왔던 장남에 대한 기대와 믿음, 그 역시 필요에 따라 안방을 내주고 집을 넘기고 가장이자 어른으로써의 권위와 책임을 저버린 건 이버지의 선택이었다.


지금의 골방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이 기묘한 동거를 완성시킨 사람 또한 아버지였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아버지는 그 골방에서 앞으로도 계속 머물 것이다.

나는 이 동거가 이버지와 장남에게 주어진

일종의 형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들의 출구는 과연 어디쯤..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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