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그들은 고개를 숙인다
확률은 1/6 이었어요
1982년에 시작된 KBO리그는
지금과는 다르게 총 6개 팀이 전부였습니다.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은 대부분
오비 베어스나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했는데
저만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그러니까 어쩌자고…
그렇습니다.
저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입니다.
야구를 알만한 사람들끼리는 그냥
핵심만 찝어서 “꼴데”라고 부르죠
(꼴찌 + 롯데)
인생사 돌아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듯
꼴데와 함께 한 지난 사십여 년의 세월은
맨 정신에 그 역사를 입에 담기조차 숨이 턱 막힙니다.
기쁘고 짜릿했던 승리의 순간보다
순위표 아래서부터 팀 이름을 찾는 게 효율적인
굴욕의 시간들이 월등히 길었기 때문이죠
거의 매년 이맘때, 그러니까 가을이 오면
어느새 기다림은 좌절이 되고 원망이 되어
울화통이 폭죽처럼 터지곤 합니다.
물론 우리끼리는 9월에 하는 야구도 가을야구다,
라고 우겨볼 때도 있습니다만
올해는 추석이 지나서도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한여름 못지않은 기온 때문에 그마저도 나가립니다.
그 사이 비슷한 처지였던 엘지는
명실상부한 상위팀으로 개과천선했고
기아는 올시즌 KBO리그를 평정하고 있습니다.
호사가들 사이에 더 이상 “엘롯기”동맹이
회자되고 있지 않은 이유입니다.
팀의 상징인 갈매기와 독수리를 묶어서
“조류 동맹”이라 이름 지었던 한화 이글스만이
꼴데와 운명을 함께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는 격언은
아마도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하마터면 하나뿐인 아들에게까지
이 고난의 팔자를 물려줄 뻔했습니다.
녀석이 아직 사리분별이 정확지 않던 꼬꼬마 시절,
꼴데 유니폼을 입혀서 야구장에 데리고 다녔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다행히 중학교 들어서 EPL 축구와 F1 레이싱으로 관심이 옮겨 간 것은 정말 천운이었어요.
어쨌든 올해도 꼴데의 시즌은 끝나갑니다.
오늘(24. 9. 23) 기준 7경기 만을 남겨뒀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일곱 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로 그 경기들을 모두 이긴다고 한들
가을야구에 초대받을 일은 없을 거 같아요.
순위는 언제나 상대적이거든요.
그렇다면 최근 6년간의 리그 순위,
7-10-7-8-8-7 로 이어지는 이른바 굴욕의 비밀번호가 하나 더 덧붙여지게 될 겁니다.
(이 글이 발행될 9. 27쯤에는 “확정”이 돼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꼴데의 마지막 우승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눈부시고 가슴 벅찼던 가을 밤에
잠실야구장 1루 쪽 내야석에서 두 팔을 벌리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청년은
이제 오십 줄을 훌쩍 넘었습니다.
하.지.만.
설렘 가득한 봄날과 함께 새로운 시즌은 다시 시작될 것이고
희망은 뭉글뭉글 우리의 심장을 두드릴 겁니다.
흑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