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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단 Jul 08. 2024

여전히, 나는 아닐 것이다.

정확히 한 달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본격적으로 올해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떠들썩하게 매운 일기예보 소식을 보며 시시덕거린 기억이 난다. 한 달 내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오는 일기예보라니 당시에는 나 역시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다. 비가 내려봤자 해년마다 오는 장마나 태풍 수준이지 뭘 그렇게 호들갑들이람.



7월의 첫날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리고 댐의 물이 불어났으니 주의하라는 재난문자를 받을 때 역시 심각성을 느끼진 못했다. 귀찮게 울려대는 휴대폰 알람을 꺼버리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홍수가 나도 카약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 짤’을 친구와 주고받으며 남일처럼 낄낄거렸다.



7월 14일, 비가 오니 운전 조심하라며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에 나도 듬성듬성 걱정을 더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인삼밭을 향한 말이었다. 내심, 비가 이렇게 많이 오니 올해 인삼 농사는 그르쳤구나 싶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자식 같은 인삼들이었으므로. 농사가 무릇 그렇듯 날씨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 풍년과 흉년을 오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나 고생하신 아버지의 노고가 홍수에 쓸려나가겠구나 싶어 쓴 침이 올라왔다. 나의 걱정은 딱 그만큼이었다.



7월 15일 새벽, 피곤함에 꾹꾹 절여진 잠을 자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의도치 않게 깨어난 잠에 짜증이 가득 묻은 표정으로 화면을 들어보니 모르는 번호다. 휴대폰 진동을 무음으로 바꾸고 다시 단잠에 빠지려는 찰나, 문득 꺼림칙한 생각이 스친다.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아버지의 번호를 눌렀으나 통화 연결음만 길게 이어질 뿐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인삼밭 걱정에 밤을 꼬박 새우시는 분인데, 이 시간에 주무시고 계실리가 없는데, 싶다가도 인삼밭 보수에 정신이 없으셔서 그렇겠지 스스로 안심시키며 아까 걸려 온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잠이 확 깨면서 등에 소름이 돋는다.



7월 18일, 아버지가 실종된 지 나흘째다. 분명 나에게 나흘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는데 나는 이 일을 직접 겪고도 전혀 내 일인 아닌 듯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새벽 서너 시쯤 걸려온 전화에 폭우를 뚫고 미친 듯이 달려간 시골집 동네 길목부터 곳곳에 세워진 소방차와 경찰차가 나를 더욱이 미치게 했다. 산사태 직전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는 김 씨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새벽에 이상함을 느껴 밖을 확인했다고 한다. 마당에 물이 들어찬 데다 빗물이 아니라 흙탕물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깨우러 찾아간 것이 김 씨 아저씨의 마지막 기억이다. 문을 여는 순간 밀려드는 토사에 휩쓸렸고 김 씨 아저씨 역시 정신을 잃었으나 약 600m 떨어진 곳에서 구조됐다. 아버지는 아직 실종 상태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실종자를 찾기 위해 드론, 항공, 보트 등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방법을 총동원해 의심지역 수변과 수상을 집중수색하고 있다고 했다. 바로 뒷산에서 시작된 산사태는 집에 직격으로 들이닥쳤고 곧바로 마을 이곳저곳을 덮쳤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아버지와 몇몇 이웃들 외에 갓 귀농한 50대 부부는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벌방리에 대대로 400년 이상을 살았다는 유 씨 아저씨는 “이렇게 비가 온 적은 없었다. 아버지나 연세가 많은 다른 어른들에게 여쭤봐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라며 “사라호 태풍(1959년 경상도에 특히 큰 피해를 남긴 태풍)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7월 28일, 아버지가 실종되고 14일이 지났다. 14일째 방치된 마을은 전쟁의 폭격을 맞았다고 해도 될 만큼 무엇 하나 제대로 된 형체가 없었다. 아버지의 인삼밭도 마찬가지다. 그곳이 밭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토사물 외에 아무것도 남질 않았다. 나는 매일 밤 아버지가 돌아오는 꿈을 꾸다 이부자리를 흠뻑 적시며 깨어나길 반복한다. 14일이면 이제는 포기할 때가 되었다고들 하는데도 나는 아버지를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오늘도 아버지의 인삼밭에 나간다. 토사물 외에 남은 거라곤 하나 없는, 밭이라는 형체가 사라진 그곳에서 흙을 퍼내고, 퍼내고 또 퍼낸다. 홍수의 흔적 탓에 퍼낸 흙만큼 땅에서 다시 물이 차오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흙탕물을 헤집어가며 토사물을 퍼내다 보면 어둑해진 하늘에 다시 아버지가 돌아오는 꿈을 꾼다. 낮에는 흙을 퍼내고 밤에는 꿈을 꾸는 나날이 끝없이 이어진다. 예견된 참사에도 웃어넘겼던, 나는 아닐 거라는, 우리 아버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럴 리 없다. 여전히,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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