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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b Oct 20. 2024

[14] 인간관계에 대한 끄적거림

어떤 것이든 우리를 통과한 것이라면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크고 작은 사건이나 잠시 나누는 대화 등등은

우리에게 경미한 영향을 줄 때도 있지만 간혹 커다란 전환점의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많은 것을 남기는 것은 역시나 '인연'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새로운 관점을 얻을 때도 있고 때론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꼭 모든 것이 좋은 것만 남길 수는 없겠죠. 

때론 몇몇 인연들은 우리들에게 수치심과 후회를 남기기도 합니다.

잠자리에 누운 순간에 아무런 맥락 없이 갑작스레 머릿속을 강타하는

그런 기억들은 아무 죄 없는 이부자리를 뻥하고 차게 만듭니다.

아마 모든 분들이 크든 작든 그런 후회스러운 기억들을 마음속에 품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최근 갑작스럽게 이불을 찬 순간이 있었는데요. 기분 좋게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카톡을 확인하려던 순간 누군가의 프로필이 업데이트되어 상단에 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사람은 참으로 독특한 인간이었습니다. 철저한 성격 덕에 엄청난 일처리 능력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그 성격 덕에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죠. 그에게 있어선 자신의 기준에 차지 않는 모든 것은 질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성격과 상반되는 유쾌한 면모 또한 가지고 있었는데요. 적절한 유머 감각이 있었고 나름대로 착실하게 쌓인 교양이 있어 생각도 깊은 사람이었죠. 덕분에 저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참으로 헷갈린 순간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이 저의 윗사람이었기도 하고 사정상 계속 붙어 다니면서 일을 해야 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몇 개월이 흘러 상황이 변하고 더 이상 저는 그 사람과 같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게다가 그 집단을 제가 떠나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접점은 없었죠.

그 사람을 떠나면서 사실 속 시원하다는 감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젠 마음 고생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던 것이죠.


그렇게 까칠하고 참 힘든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긴 채 시간이 흘렀고 정신 차려보니 당시의 그 사람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가 저에게 까칠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를 냈던 순간도 많았지만 근무 시간 중 몰래 카페에 데려다준 적도 많았고

갑자기 같이 일을 하자며 저를 끌고 갔던 것이 알고 보니 힘든 작업에서 저를 빼오기 위함이었던 적도 있었죠.


당시엔 알아차리지 못했던 여러 친절의 순간들이 떠오르니 그 사람에게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를 저에게 나빴던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나름 저를 챙겨주고 배려했던 순간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그곳에서 나온 지 한참이 지난 후였죠. 그 사람도 책을 좋아해서 밖에서 만나면 같이 책 이야기나 하자며 잘 가라고 했었는데 결국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보여준 호의를 내가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이 사람이 나한테 참 실망도 많이 하고 서운해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챙겨줬는데 사실상 제가 손절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요. 때문에 아직까지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잘해줄걸 그랬나 싶고 이후에 연락이라도 한번 할걸 그랬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후회도 어쩌면 어렸을 때보다 지금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되어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엔 그 사람의 다양한 면을 보기엔 내가 너무 힘들고 상황도 여의치 않았던 것이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인연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의 연속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가면 누군가 오고 또 누군가 잊히면 누군가는 기억이 되겠죠. 가족 간의 인연도 친구 간의 인연도 길게 보면 결국 왔다 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생각도 속한 장소도 계속 변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또한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따라서 그 인연이 반드시 영원해야 되는 건 아닙니다. 점점 멀어지고 있는 기차를 사람의 힘으로 다시 오게 할 수 없듯이 점차 멀어지고 있는 인연은 결국 무슨 짓을 해도 멀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겠죠. 그 과정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고 또 내가 누군가의 기대에 부흥했나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덧없는 고민일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있던 그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안함을 많이 털어냈지만 여전히 여러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초연해지질 않더군요. 그래도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과의 일에서 내가 굳이 아등바등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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