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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b Dec 08. 2024

우리는 모두 명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배움에 있어서 그리 부족하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지만 유일하게 후회가 남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술"과 관련된 분야인데요. 책 한 권 스스로 읽지 않았고 미술이나 음악에 대해서는 미술/음악 시간에 보고 들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긴 시간에 열심히 놀기도 하고 다른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곤 합니다. 만약 그 시간에 더 많이 읽고 보고 들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넓은 취향을 가지고 많은 것을 즐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이후에 대학에 와서 여러 교양 수업을 듣고자 했던 것도 그 아쉬움 때문이었습니다. 문학이나 영화와 관련된 교양 수업을 많이 들었었죠. 덕분에 과제가 많아지고 몸은 힘들었지만 공대생인 저에게 무척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교양 수업을 듣는 순간에는 각종 역학이나 수학 공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말이죠. 그렇게 들은 여러 강의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강의가 있습니다. 마지막 학기에 들은 "고전음악의 이해"라는 과목인데요. 특히 드뷔시의 "바다"에 대한 교수님의 설명에서 "이 곡은 드뷔시가 가쓰시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바다의 파도 아래'라는 그림을 본 뒤에 느낀 감정이 큰 영향을 주었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더군요.


교수님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는 어떤 애틋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지금 시대엔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면 간단하게 카메라 앱을 켜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기 때문이죠. 사진을 찍든 짧은 글을 남기든 동영상을 찍든 그 모든 것이 너무나 간단하게 이뤄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없던 시대엔 그렇지 않았겠죠. 사진조차 귀했기에 자신이 느낀 무언가를 어떠한 형태로 남길 수 있는 기회란 특권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때문에 드뷔시 같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감정과 특별한 순간을 남기기 위해 노력과 재능을 쏟아부었다고 생각하니 과거의 예술 작품들이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얼마 전 읽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에서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했던 작가는 피터르 브뤼헐의 <The Harvesters>라는 그림을 보고 아래와 같은 감상을 남겼습니다.


너무도 일상적이고 익숙한 광경을 묘사하기 위해 피터르 브뤼헐은 일부러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의 맨 앞자리를 이 성스러운 오합지졸들에게 내주었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명화들 중에서는 사람들의 일상, 특히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목가적인 풍경을 그린 그림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들이 보기엔 그 풍경은 과거의 풍경이겠지만 그림이 그려지던 당시엔 화가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이었겠죠. 아마 그 그림들을 현대에 치환한다면 여러 형태의 근무자들이 그림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나에겐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이라고 하더라도 어쩌면 누군가의 그림이나 음악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 작품엔 필히 어떠한 아름다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결국 단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내 일상에도 그러한 아름다움이 어딘가에 숨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바쁘고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의 현대 사회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가끔은 잠시 숨을 고르며 지금 이 순간이 거장에게 포착된다면 어떤 명화가 나올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은 무척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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