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판타지

by 하하룰루

익숙한 제목에

그저 호기심으로
판타지 소설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소설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주인공의 교통사고와 함께
보노보와 영혼이 바뀌는 판타지로 접어들고...

황당무계하다는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이를 어째.. 하며 그 안타까운 스토리를

하염없이 쫓다,

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감탄을 넘어서고 나면,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마무리하게 됩니다.

모든 인생에 단 한 가지 확실한 명제는 죽는다는 것뿐, 그럼에도 우리는
단순하고 누구나 아는 그 명제를 때론 외면하거나, 언제나 계속 살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가지요.
이 책은
보노보와 영혼이 바뀌었지만, 다시 자신의 몸을 찾아 살고자 하는 한 여자와.
별 볼일 없고 구차한 인생 언제 끝나도 그만이라는 한 남자를 통해.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살아야 한다',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밑줄을 옮겨봅니다.

고민의 핵심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넋 나갈 만큼 좋아하는 것조차 없었다. 대신 어떻게 해야 아버지가 좋아할지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간장 종지에 맞는 자리를 찾아 돈을 버는 것이었다. 간장종지만 한 무역 회사에 다니다 퇴직해서 물류창고 야간 경비원이 된 아버지를 보면 그럴 마음이 안 났다. 젊어선 황소처럼, 은퇴 후엔 늙은 소처럼 일하는 인생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웠다.



불길 속으로 서서히 전진하는 관을 보자 어찌할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달아나지 않았더 라면, 자전거를 멈추고 문을 열어봤더라면 화구가 닫힌 후, 나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깨달았다.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진실, 무슨 짓을 하든, 얼마나 후회를 하든, 해병대 노인의 부름을 듣던 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무언가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 했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순간에.



운명은 우리 둘 사이에서도 공평하지 않았다. 지니에겐 선택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지니의 몸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나는 지니의 삶에 쳐들어온 침입자였다. 지니에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입이 있다면 나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너는 내게 왜 이러느냐고,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쳤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나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다.




사흘간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고 길게 쓸 수 있다는 점에 한번,
이렇게 긴 이야기를 지루할 틈 없이 빼곡히
섬세하면서도 담담한 묘사들로 채운
작가의 필력에 여러 번. 놀라며.

판타지라는 장르로,
"내게 허락된 삶의 시간 동안 우리는 정해진 운명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진이, 지니. 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지난 며칠이었습니다.

정유정의 소설은 이 책이 처음이었는데...
왜들 그렇게 정유정 정유정 하는지 저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며..ㅎㅎ
다른 작품들도 또 읽어봐야겠습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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