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함부로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한 톨의 기도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신다고 한다. 남편이 팔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이들을 케어하는 게 힘들어서 지나가는 마음으로 '주님, 남편은 누워서 쉬고 있겠죠? 저도 좀 누워서 푹 쉬고 싶어요.'라고 생각했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이 안될 때가 많은데 스쳐가듯 한 혼잣말이 기도로 받아들여져서 이루어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 난 계속 누워서 쉰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 사람들은 일단 침상안정을 하며 쉬어야 된다고 했다.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휴대폰으로 그동안 못 봤던 영상들을 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재밌다고 하는 솔로×옥을 바빠서 못 봤었다. 1편을 시작하니 그다음이 궁금하고, 그다음이 궁금해서 금방 끝 편까지 이어봤다. 왼쪽으로 누웠다가 바로 누웠다가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자세를 바꿔가며 아픈 와중에도 재밌게 봤다. 그런데 그런 즐거움도 잠시였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통증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누워서 쉰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점점 내가 있는 이 방과 침대가 보이는 세상의 전부가 되고, 온갖 잡생각이 내 머리를 채운다. 내가 아파진 날을 끝없이 복기하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를 하고, 왜 내가 이렇게 아파진 걸까 하는 원망이 머릿속을 채운다. 얼른 나아서 다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면 지금 내 처지가 불쌍하게 느껴지며 눈물이 자꾸 난다. 일상생활을 되찾기 위해 통증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꼭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사를 맞고 온날, 처음엔통증이 조금 줄어든 것같았다. 그런데그날 밤이 가까워오자 주사를 맞은 허리는 점점 묵직한 돌이 단단하게 얹혀있는 것처럼 무거웠고, 그 아래 다리 쪽으로 흐르는 신경 하나하나가 살아 꿈틀대며 자기 위치가 여기 있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벌레가 다리를 기어가는 듯한 기분 나쁜 저림이 왼쪽 다리를 타고 엄지발가락까지 이어졌고, 온몸은 몸살을 하듯 아팠다. 나는평소잠에잘 때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잠들곤 했다. 편안한 목소리와 따뜻한 내용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말씀 1편이 끝나고, 2편이 끝나고, 3편이 끝나도 잠에 들 수가 없었다.바로 누우면 주사 맞은 부위가 아파와서 양쪽 옆으로 번갈아 누우며 계속 뒤척였다.날이 조금씩 밝아지는 아침에 가까워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주사를 맞고 나면 허리가 당장 안 아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며칠을 지나도 허리통증과 새롭게 생긴 다리 저림은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고민하고 있을 무렵, 시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남편을 통해 내가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셨던것이다.
"새아가, 아고 이게 무슨 일이고~ 애기 목욕시키다 허리 다쳤다믄서. 어떻노? 지금 좀 괜찮나?"
어머니의 살갑고 따뜻한 목소리에 애써 괜찮은 척하려던 목소리가 흔들렸다.
"네에.. 어머니.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왔는데 아직조금 불편하네요.. 어머니도 평소에 허리 아프시다고 하셨는데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제. 너무 아플 때면 항상 가는 병원에서 주사 한 대 맞고 오면 싹 괜찮아진다. 새아가도 거기 한번 가볼래? 가만있어봐 누구더라. 아 그래. 00 병원에 000 원장이다."
"네 거기 한번 가볼게요. 아무래도 의사마다 다르게 볼 수 있으니까 00 병원도 한 번 가볼게요 어머니. 전화 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시어머니께서 추천해 주신세 번째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시어머니와 막내형님께서 아이를 봐주시겠다고 하셔서 맡기고 남편과 함께병원을갔다. 혼자서 병원을 가지 않으니 가는 길에 남편이 나를 부축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힘들 때는 누군가가 옆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병원 안에 들어서니 어르신들이 진료실 앞 의자를 가득 채우고 계셨다. 한참 대기한 끝에 들어간 진료실에는 의사의 각종 이력이 홍보되어 있었다. 왠지 이 의사라면 나를 고쳐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신뢰감이 생겼다. 의사 선생님은정확한 진단을 위해mri를 한 번 찍어보자고 했다.
"mri 사진을 보니4~5번 디스크의 섬유륜이 찢어져서 수핵이 조금 흘러나와있네요. 그런데 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수술해야 할 정도는 아닌데 왜 이렇게 아프죠? 진통제를 먹어도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너무너무 아파요."
"그래요? 그 정도는 아닐 텐데... 일단 처음이니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체외충격파치료를 몇 번 받아보면서 경과를 지켜보죠. 운동 한 번 해보세요. 나가면 운동법이 적힌 소책자를 줄 겁니다."
대기시간에 비하면 의사 선생님과의 만남은 5분남짓으로 매우 짧았다.진료실을 나오니 간호사가 허리에 좋은 운동법들이 적혀있다며 소책자 한 개를 주었다. 누운 상태에서 윗몸일으키기 하듯복근 운동을 하는 모습, 무릎을 가슴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자세 등의 동작 사진과 설명이 적혀있었다. 그림들을 보며 내 지금 상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동작들이라고 생각했다. 이걸 꾸준히 시도하면 정말 낫는다는 건지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다녔다.
체외충격파 치료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이 치료를 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함께 들었다. 치료 전에 결제를 먼저 해야 된다고 해서 카드를 내밀었다. 충격파치료는 1회당 15만 원이라고 했다. 헉. 1회에 15만 원이라니. 앞으로 꾸준히 받아보라는데 비용이 너무 부담된다고 생각했다. 실비보험 들기를 정말 다행이었다. 비용은 모르겠고 일단 낫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며 치료를 받으러 물리치료실에 갔다.
"환자 분 허리가 아프시다고요. 엎드려 누워보세요. 어느 쪽이 제일 아프세요?"
"허리 양쪽하고 꼬리뼈 주변 왼쪽 엉치가제일 아파요."
물리치료사는 내 몸에 차가운 젤 같은 것을 짜서 발랐다. 그리고는치료기기 전원 버튼을 눌렀다. 기기를 켜니타다다닥타다다닥소리가 일정하게 들렸다.내 허리 부분에 안마기처럼 생긴 치료기를 갖다 대기 시작했다.통증이 없는 허리 부위를 갖다 대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내가 많이 아픈 부위에 갖다 대니 깊은 내 몸 안 쪽을 후두려 패는 느낌이었다. 전기가 찌릿찌릿하며 깊은 층까지 투두두두 때리는 치료에 악소리가 저절로났다.
"치료사님, 악~ 너무 아파요. 살려주세요."
마치돈을 내고고문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강도를 약하게 조절해 줄 테니 참고 받아보라셔서 입술을 꽉 깨물고 참으며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마치니파김치처럼 온몸이 축 처지듯 힘이 없었지만,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에참을 수 있었다.치료를 마치고 또 진통제, 근육이완제, 위보호제 3종세트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똑같은 종류의 약이 있어 어떤 것을 먹어야 할지 몰랐다.일단 오늘 새로 받아온 약을 먹어보기로 했다. 이 약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혹시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다음날아침, 어제보다 왠지 허리통증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나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은 것 같아정말 정말 기뻤다. 그래서 의사가 추천한 대로 2~3일마다 치료를 받기로 하고 얼른 다음 예약을 잡았다.그런데2번째 치료를 받았을 때 약간 긴가민가했다.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3번째 치료를 받고 난 뒤, 아픈 부위가 더 예민해지고있는 것 같았다. 4번째 받던 날은 치료를 받는 중에 통증이 확 몰려왔다. 치료를 받으면서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참으면서 받아서는 안 되겠다. 이 치료, 나와는 맞지 않는 거다.'
충격파치료는 그렇게 이름처럼내 몸에 충격만 남기고 중단되었다. 나아지고 싶어주사를 맞고 치료를 할수록 더 아파지는 것 같아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작가의 말 : 체외충격파 치료는 통증 부위에 충격파 에너지를 가해 손상된 세포들을 활성화하고, 혈류 공급을 증가시켜 조직 재생의 과정을 돕는 치료입니다. 어깨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에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저의 몸에는 맞지 않았으나 다른 분께는 효과적인 치료법일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