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병은 그동안 내가 겪었던 병과는 달랐다. 그동안 살면서 어딘가가 아플 때면 병원에 가서 어떤 병인지 진단을 받아 약을 먹고 치료를 하면 대체로 1~2주 내에 회복되었다. 그런데 이 번의 허리통증은 그렇게 단순하게해결되지 않았다.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보고,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척추전문병원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약을 처방해 먹고, 신경차단술 주사를 여러 차례 맞아봐도 통증이 금방 좋아지지 않았다. 상처가 피부밖에 드러나서 보이기라도 하면 참 좋을 텐데 몸 안 속에 숨어있어서 상태를 볼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도대체 내 허리는 어떻게 된 것인지,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 허리병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 주변에서 너도나도 추천해 준 책이 있었다. 허리통증 도서계의 바이블이자 '허리의 정석'같은 책인 백X허리 책이었다. 나도 그 책을 구입했다. 그 책의 저자이신 서울대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올리신 유튜브 영상도 처음부터 차례차례 보았다. 듣고 보며 알게 된 내용을 요약하면, 허리통증의 원인은 대체로 디스크의 문제이며, 허리를 펴고 척추에 바른 자세(요추전만)를 잘하면 찢어진 디스크가 저절로 붙으며 요통이 낫는다고 했다. 책에서3가지 하라는 것, 3가지 하지 말라는 것이 있었다. 3가지 하라는 것은 '걷기', '2차 자연복대 근육 강화하기', '운동 후 충분히 쉬기'였다. 3가지 하지 말라는 것은 '허리 구부리는 스트레칭 절대로 하지 마라','허리 주변 근육 강화 운동 절대로 하지 마라', '허리 운동 진도 앞서 나가지 마라'였다.
그런데 책에서 하지 말라는 것 중 '허리 절대로 굽히지 마라'가문제였다.길에 떨어진 돈이 100만 원 이하이면 줍지 말라고 할 만큼 허리를 굽히는 동작이 디스크에 안 좋다고 나와있었다. 그래서 책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드려당분간은 허리 굽히는 동작을 절대로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누워있을 때도 꼿꼿하게 정자세로 누워있고, 서있을 때도 허리를 펴고 서있고, 걸어 다닐 때도 허리를 펴고 걸으려고 했다. 아마 교수님은 절대로 굽히지 말라는 말을 이렇게 지키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상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다 굽힐 테니 최대한 피하고 허리를 펴는 자세를 하라는 의미에서 강조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허리병을 하루빨리 나아 생후6개월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마음이 너무 조급했다.조급함은 때때로 그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한다. 그렇게 나는허리를 '절대로' 굽히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점점 허리를 사용하는 동작을 피하다 보니 내가 한 번이라도 굽혀서 무언가를 줍는 순간 디스크가 팍! 하고 터지며 통증이 더 심해질 것 같은 생각에 허리를굽히기가 점점 더 무섭고 어려워졌다. 굽히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기 위해서 척추환우카페에서 꿀템으로 추천해 준 고깃집 신발집게를 구입했다. 고깃집에서 손님들의 신발을 정리할 때 쓰는 기다란 집게였다. 집게를 이용해서 아이 기저귀도 줍고,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도 줍고, 장난감도치웠다. 남편은 내가 그 집게로 물건들을 줍는 것을 보고 웃었다.
허리를 굽히지 않고 서서도 물건을 주울 수 있는 집게.
"여보, 그렇게 허리를 펴고만 다니니 걷는 게 꼭 로보트같아요. 부자연스러운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그리고 평생 집게로 집고살 수는 없을 텐데. 허리를 편하게 움직여야 빨리 낫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여보. 당신이 몰라서 그래요. 책에서도 그랬고 척추환우카페 사람들도 나을 때까지 허리를 최대한 굽히지 말래요. 당분간 나는 디스크 다시 안 터지게 조심하려고요."
터진 디스크를 최대한 빨리 낫게 하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스크야 얼른 붙어라, 붙어라.' 비는 마음으로 그렇게 누워서 쉬고, 진통제를 먹고, 집안에서 조금씩 걷는 운동을 하며 통증이 줄어들기만을 바라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데 허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의식하며 동작을 할 때면 몸이 더 긴장을 하게 되고, 그 동작을 할 때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 근육이 아닌 다른 근육들을 과도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 움직임들이 반복되자 허리 말고 다른 부분들도 점차 아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리가 아팠고 그다음은 목도 아파졌다. 몸 곳곳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와닿았다. 한 군데가 아파지면 몸의 여러 부위가 연달아 아파지며 그렇게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것이다.아픈 곳들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어 침대에 더 눕게 되면 소화기능도 함께떨어진다.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고, 겨우 먹은 음식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 몸안에서 정체되어 항상 더부룩하고변비도 심해졌다. 몸 전체가 안 좋아지는 악순환이시작되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사고로 다쳐서 혹은 병환으로입원하여한 번 병상에 눕게 되면쉽게 회복되지 못하는 게왜 그런 건지내 몸을 통해 직접이해하게 됐다.
허리통증의 악순환고리. 책 '안녕, 통증' 속 삽화.
그렇게 허리가 아픈 지 두 달이 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바닥에 눕는 것 자체가 힘들어져 새로 침대를 구입한 지 며칠 안된 날이었다. 침대에 눕고 일어나는 것조차 통증 때문에 힘들었는데, 잠들기 전 화장실을 가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려 힘을 준 순간 허리에 급격한 통증이 몰려오고 무릎에서 '뚝-'하며 무언가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 들리던 관절소리는 아니었다. '아, 이거재발이구나'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복합적인 감정들이 몰려와 나를 마구 흔들어놓았다.불안정한 허리가 자꾸삐끗하기를반복하는 것에 대한 원망.회복을위한노력들이한순간 무너져내리는것 같아서 생기는 억울함. 아픈 나 때문에 육아의 무게를 모두 짊어지고 있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 이 모든 감정들이 뒤엉켜 눈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걷기가 힘들어119를 불렀다. 밤이라 남편은 자고 있는 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나는 혼자 들것에 눕혀진 채 구급차로 옮겨졌다. 그날따라 밤공기는 차가웠다. 구급차 소리는 조용한 동네를 가득 채웠고 두려운 내 마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 춥고 무섭고 떨려서 이빨이 딱딱 부딪히는 채로 나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입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