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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이 Jul 04. 2024

정신건강의학과 입원기

#2 입원 계기

  2024년 초부터 이런저런 사건을 겪고 나니 조금씩 우울해졌다. 이미 나는 개인병원을 다니며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음에도 우울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3월 정도에는 너무 우울해서 집 청소도 못하고 나 스스로를 씻는 것도 힘들었고, 열심히 돌보던 식물들도 돌보지 못해 다 죽고 말았다. 집안은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냉장고 안은 음식이 상해 악취가 나고, 나도 제대로 씻지 못해 여드름이 너무 많이 났다. 옷과 수건은 제때 빨지 못해 여러 번 썼다. 날씨가 추운 것에 감사했다. 기존에 재미있게 하던 요리나 베이킹도 재미가 없었고, 식물은 다 죽어버렸고,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거나 웃고 떠드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그냥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씻지 않고 누워 유튜브만 보다 겨우 옷을 벗어던지고 잠에 들고, 잠을 설치다가 늦게 일어나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하고 지각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음식을 먹으면 속에서 받질 않아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식욕도 없어서 3개월 만에 7킬로가 빠졌다.


  다행히도 다니던 병원이 있었기 때문에 내 우울함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고, 병원을 가던 주기를 한 달에 한 번에서 2주에 한 번으로 줄여서 나의 상태를 상세히 살피며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병원을 다니고 있지 않았으면 우울한 줄도 몰라서 큰일이 났을 수도.) 하지만 나는 정말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연초부터 일어났던 사건들 중 그 어느 것도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때 당시 힘들고 지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그렇게 바랐던 주변 사람들의 인정, 지도교수의 인정, 화목한 가정을 얻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나는 우울한 것일까.


  나의 우울함은 끝도 없이 커져만 갔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다며 지도교수에게 약 10일 정도의 휴가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10일 동안 본가에 내려가서 쉬고, 대전으로 내려가 친구도 만나고 자유롭게 지냈다. 그렇게 하니 증상이 매우 많이 호전되었다. 이제 다시 힘내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시 돌아간 연구실에서의 생활 2일 만에 나는 너무 무기력하여 무단결근을 했다. 다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본가에서 출퇴근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전해서 출근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훨씬 나았다. 밥을 안 먹으면 밥을 먹으라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아침마다 깨워주는 사람이 있고,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는 반려묘 먼지도 있고, 계속해서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조금은 나은 느낌이었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생활만 가능하지 내 우울감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살아있기 힘들다는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흐르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있기가 너무 힘들어 죽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죽을 방법을 시도했다. 운전을 하다가 앞차를 박으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속력을 내다가 정신 차리고 브레이크를 밟는다던지, 커터칼을 손목에 대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다던지, 예전에 받아두었던 수면제 약을 보고 얼마 이상 먹어야 치사량 이상인 것인지 찾아본다던지, 등등의 일들을 했다. 그러다 문득 확 정신이 차려져서 ‘이러다 정말 내가 나 자신을 죽일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엄청나게 불안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나는 진료일이 아닌데도 무작정 다니던 개인병원에 찾아가서 선생님께 나의 상태를 말했다. “저 도저히 살아있을 자신이 없어요. 이러다 제가 절 죽일 것 같아요.”라고 하니 선생님께서는 처음 듣는 단호한 목소리로 “란이 씨, 당장 입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학병원급의 큰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고, 지금 여기서 다룰 상태가 아닙니다.”라고 말하셨다. 항상 부드럽게 말씀하시던 선생님께 처음 듣는 단호한 말투였다. 지금까지 날 계속 봐오셨고, 내가 졸업학기라서 매우 바쁘고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단호히 말한다면,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바로 진료의뢰서를 써주셨고 나는 그것을 들고 근처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잡았다.


  그러나 전공의가 없는 시기였기에, 외래는 한 달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외래를 기다리며, 본가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기다린 지 3일 만에, 나는 또 자살시도를 했다. 운전하다가 정말로 사고를 낼 뻔했다. 그 길로 나는 도저히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친구에게 알렸다. 친구는 당장 응급실에 가자고 하며 함께 응급실에 가주었다.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정말로 고맙다.) 그렇게 내가 내 차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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