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아픈 손가락
외갓집으로 가던 길
어머니에게는 늦둥이 막내 동생이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와서 셋째를 낳은 뒤에야 태어난 외삼촌이었다.
외할머니는 외삼촌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고, 그 이후 외갓집에는 외할아버지만 남았다.
외삼촌은 나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 내가 외갓집에 갈 때마다 친구처럼 잘 놀아주었다.
그가 흉내 내던 동물 소리와 우스꽝스러운 몸짓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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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했던 외갓집의 풍경
외삼촌뿐 아니라 외갓집 이모들도 늘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외할아버지는 인자한 미소로 나를 예뻐해 주셨다.
엄하던 아버지와는 달리, 외갓집에는 언제나 따뜻한 품이 느껴졌다.
그래서 방학 때면 어머니께 외갓집에 가자고 조르곤 했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멀미약을 먹으며 4~5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던 그곳.
그럼에도 돌담길을 뛰놀던 기억, 아침마다 풍기던 소여물 냄새, 흙집과 소들이 어우러진 시골 풍경은 지금도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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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건너편의 이야기
외갓집 사랑방 건너편에는 젊은 시절 일본에서 생활하셨던 작은 외할아버지도 계셨다.
그분이 들려주던 일본 이야기와 6·25 전쟁 중 아들을 잃은 사연은, 어린 마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쟁 통에 비행기 소리에 놀란 아들은 피신한다고 가까운 오두막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하지만 아뿔싸 포탄이 거기에 떨어지는 바람에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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