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 있지 않아요? 말이 앞설 때. 설레발 치듯 말을 늘어놨는데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을 때가 있죠. 누군가는 그런 사람을 보고 떠버리라고 하고요, 도가 넘으면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말과 행동 사이는 참 오묘해요. 말 또한 생각의 표현으로 현실에 발화하는 행동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그렇죠. 하지만 말로써 실천한다고 하지는 않지요? 말은 음성의 표현이고 실천은 실제 행동입니다. 말과 행동 둘 다 표현이라지만 알고 보면 차이는 확실히 있습니다.
행동과 실행의 ‘행(行)’ 글자는 네 방향으로 갈라진 사거리를 그린 상형문자로 ‘가다’라는 뜻을 지녔어요. 길은 사람이 오고 가는 통로입니다. 두 다리로 나의 길을 걷는 동력이 있어야 행동입니다. 나의 길을 가는 과정에는 자신의 선택이 매 순간 따르죠? 사거리는 갈라진 길로 어느 길을 택할지는 각자의 몫이에요. 갈림길에서는 사람의 선택이 반영되니까요. 그래서 말은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 단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음의 결정이 담긴 말일 수도 있고 별 생각 없는 음성 또한 말이니, 이 둘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에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못하는 것 즉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논어ㆍ이인
말과 행동 사이에는 음성에 그치느냐 실제로 내 몸을 움직여 일을 진척시키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동력이 있고 없고의 극명한 차이인 거죠, 그래서 예로부터 인격과 품행이 뛰어난 군자는 말을 신중하게 했답니다. 심사숙고해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철저히 구분했습니다. 자신의 그릇을 알고 가치 있는 말과 실행할 말만을 추려냈습니다. 말에 가치가 없으면 말이 공중에 떠돌며 의미를 잃고, 실행으로 옮기지 않은 말은 신뢰를 잃기 때문이에요. 뜻을 굳게 하는 군자에게 의미를 찾지 못하고 신뢰를 잃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의로움을 따르며 시비판단을 확실히 하는 군자에게 이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SNS의 영향권 아래 자신을 드러내는 시대입니다. 다수에게 공개되는 온라인에서 의도대로 자기 포장을 하다 보니 진정성이나 허언증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의심하는 강도는 점점 높아져만 가는 현실지요. 의심은 손실을 막기 위한 기본적인 습관이 된 지 오래여서, 사람 내음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네요.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외로움을 달래 줄 대화가 통하는 사람, 뒤통수치지 않을 믿을 만한 사람 몇 명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속이지 않고 과대포장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기파악이 된 사람이지요. 자기파악은 신중하게 내면을 탐구하고 헤아려 생각해 본 이력이 있는 사람이고, 그들은 자기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쉽게 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맹자ㆍ이루상
내 안에서 나온 모든 말과 행동은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아요. 속아도 보고, 내가 판 함정에 빠지게도 해보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케케묵은 일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내 발목을 붙잡기도 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까닭에 평소에 더 신중을 모으는 태도를 몸에 새기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처세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아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을뿐더러 몸을 삼갈 줄 알게 됩니다. 한계점을 분명히 하고 스스로 맡은 바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거에요.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공개적으로 말을 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시중(時中)에 맞게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가게 됩니다. 말이 앞서고 실행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나요. 그 마음은 본성에 충실한 군자의 마음입니다.
사실 저는 어떤 결정을 하면 주변에 먼저 알리는 경우가 있어요. 마음속에서 한참을 방황하다가 내린 결론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꺼려지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은 분명 있습니다. 어렵사리 마음을 굳게 먹은 일이 수포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을 생각해 봐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 내뱉은 말은 천근의 무게가 있습니다. 드물게 내뱉은 말은 꼭 필요한 말일 것이므로. 그래서 선언합니다. 나를 아끼는 주변인들에게요. 내 다짐을 공고히 하여 자신과 한 약속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하는 거죠. 마음을 결정을 꼭 지키고 싶어서요. 책임을 다하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