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기 vs 일단 시작하기
자. 선언을 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실행해야 할 때입니다. 이전의 실행이 일단 해보는 거였다면 이제는 뭘 좀 제대로 알고 하는 기분이랄까요? 제대로 알려면 격물치지(格物致知) 해야 하죠. 대학 팔조목의 도입부입니다. 팔조목은 인성과 품행이 단정한 사람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8가지 실행방법인데요, 그래서 예로부터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팔조목을 몸에 실으려는 마음공부와 몸공부를 했습니다.
군자는 말은 신중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
—논어ㆍ이인
신중함과 민첩함은 극과 극입니다. 그런데 극과 극은 만난다죠? 민첩하기 위해 신중하고, 신중을 기하기를 민첩하게 합니다. 민첩하기 위해 신중한다는 것은 즉각적으로 알겠지만, 신중하기를 민첩하게 한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예를 들어, 멍 때리고 있다? 멍하니 있는 것은 특정한 생각없이 부유하고 있는 상태에요. 깊은 생각에 빠져들지 않은 상태이니 신중한 상태가 아니죠. 신중을 기하는 건 내 마음의 의지에요. 의지는 노력하는 행위가 따르지 않으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생각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니 신중하기로 뜻을 품었으면 민첩하게 생각과 마음의 자리를 옮겨 실행해야 하는 거죠.
목표를 세웠으면 실행해야 합니다. 대학의 팔조목이 ‘격물(格物)’, 앎에서 시작하여 ‘평천하(平天下)’, 세상을 평정함에 이르는 것처럼 의지로 가득 찬 목표는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 해야 해요. 목표의 실행을 공고히 하며 매니페스토(manifesto)를 작성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정치가들이 내세우는 공약처럼요.(그러나 꼭 지킬 것만을 추리기로 해요) 그래서 군자는 말을 신중하게 했어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여 자신이 꼭 지킬 것들만 추리고 추려 선언하는 겁니다. 군자는 지키지 못할 말을 앞세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꼭 지킬 것들을 선언했으면 그 다음은? 거리낄 게 뭐 있겠어요. 직진입니다. 우선순위에 맞게 리스트업한 내용들을 민첩하게 실행에 옮깁니다. 저는 이걸 일명 ‘투두리스트(to-do list) 격파’라고 해요. 10개가 넘은 지 오래된 리스트는 정리하는 과감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매 순간 점검하는 거죠. 내가 설정한 방향대로 잘 가고 있는지, 변화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게 최선의 선택인지 끊임없이 궁구합니다. 중요한 건 궁구하면서도 실행에 지속성을 갖춘다는 거에요. 거친 풍랑을 만나도 계속되어야 하는 항해처럼요. 생존을 위하여, 꿈을 위하여 항해를 멈추지 않습니다.
성실함은 하늘의 도리이고, 성실해지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다.
—맹자ㆍ이루상
성실함은 마음가짐을 넘어선 실행력입니다. 보통 ‘저 사람 참 성실해’라고 할 때는 그 사람의 근면함과 지속하는 힘을 두고 말하지, ‘생각을 성실하게 하네’라고 하지 않죠. 정성을 다하는 행위가 하늘의 도리이고, 그렇게 하고자 여기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맹자는 말합니다. 사람의 도리를 따라가다 보면 하늘의 도리와 만나게 됩니다. 하늘의 도리를 깨닫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게 됩니다. 깨달음이 먼저이든, 행하면서 깨닫는 우리는 생각과 행동하기를 지속하는 순환 속에 있습니다. 생각하고, 최선을 택하고, 행하고, 또다시 생각하며 최선을 행하는 삶은 선순환 그 자체입니다.
한자에는 한 글자 속에 스토리텔링이 들어 있어요. 성실과 정성을 뜻하는 한자 ‘성(誠)’은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말 또한 행동입니다. 생각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니까요. 무엇을 이룬다는 것은 완성형태로 갖추어지는 것이기에 자기 행동의 결실입니다. 말을 이룬다는 것은 말을 갖춘다는 것이므로 ‘성(誠)’은 참되고 진실된 말을 의미하기도 해요. 즉 성실함으로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참되고 진실되게 만들어 내는 실행력을 의미합니다.
한동안 이어지다 말 것 같던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사그라들 줄 모르고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진심을 담은 진정성은 요즘 사람들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은 터줏대감이 되어버렸어요. 가짜가 많은 세상, 연극이 일상에 되어버린 처세술 덕택에 진짜와 가짜를 가릴 줄 아는 게 귀한 능력이 되어버렸지요. 얼마나 가짜가 많으면, 사기꾼이 얼마나 많으면,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 마음 다친 이들이 얼마나 많으면 진정성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 걸까요? 슬픈 현실입니다.
생각을 잘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실수를 예방할 수 있으니까. 당황스러운 일을 모면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신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어디 생각만으로 일이 해결되던가요? 예방과 모면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염려에 기대어 있습니다. 신중함은 행동하기 전 체크리스트(check list)와 같아요. 생각은 행동을 위한 것이고, 신중함은 훌륭한 실행력을 위한 기초 공사와 같은 것이죠. 행동과 실행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진리가 숨어있습니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깊어지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희귀하고 이상한 사건과 사례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살다 보니 공상이 더 풍부해진 덕일지도 몰라요. 생각이 망상이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생각이 자기합리화에 묻혀 본래 뜻에서 왜곡되기도 하고요, 내 이익을 생각하다 보니 초심을 잃고 본뜻을 굴절시키기도 합니다. 카메라 앵글의 각도를 조정하고 줌인과 줌아웃(zoom in and out)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깨끗했던 마음은 끝없이 채색되기를 반복하다 못해 빼곡한 검은색으로 변모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퇴색해 버린 나의 무수한 생각들이 원망스러울 때면 자괴감으로 가는 급행열차에 이미 몸을 실은 후임을 인지하게 되죠.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어서 생각하기를 잠시 멈춥니다. 생각만으로 지쳤던 날들에 안녕을 고합니다. 생각하기를 그만둘 리 만무하지만, 생각만으로 무성한 숲을 이루기를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숲은 환영이므로. 가짜 세계에서 성장할수록 내 영혼은 어딘지 모를 곳을 떠돌고 내 육신은 죽어갈 것이므로. 생각하기를 잠시 멈추고, 몸을 움직이기로 결심합니다. 생각으로 이뤘던 세계가 현실에서는 전혀 아닌 게 될지언정, 지금 움직여 깨닫고 실제로 이뤄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성실과 정성을 뜻하는 ‘성(誠)’의 획을 그으면서 다짐에 다짐을 더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