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미리 준비하는 사람 주변에 꼭 있죠? 그런 이들은 기회가 척 달라붙는 것 같아요.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여기에도 척, 저기에도 척척 말이지요. 마치 그때를 기다려왔다는 마냥, 시기적절하게 원했던 자리를 꿰찹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승진대상에서도 1순위,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재빠르게 이동하지요. 주변의 다른 이들이 눈독 들이고 있던 자리라 할지라도 무슨 운이 텄는지 자꾸 그 사람에게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질투의 대상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요?
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리가 생겼을 때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걱정하며,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남이 나를 알아줄 만하게 되기를 추구한다. —논어ㆍ이인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비슷한 위치에서 친했던 사람이 달라지는 일 겪어본 경험 한번 즘은 있지요? 사는 형편도 비등비등하고, 살아가는 가치관마저 비슷했는데 자기 일에서 승승장구할수록 멀어져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서로 막역하게 지냈는데 거리감 팍팍 느껴지게 갑자기 격식을 차리지 않나, 전화해도 잘 받지도 않고 심지어 다시 연락도 안 하고 말이지요. 이전과 달라진 게 한두 개가 아녀서 서운하다가 화도 나고 그랬던 경험. 그러다가 힘들어지면 연락해 너만한 친구가 없다고 하다가 또다시 자기 자리로 떠나듯 휙 가버린 옛 친구. 이런 박탈감 한번 즘은 있잖아요.
내 친구가 그랬든, 내 친구의 친구가 그랬든, 사돈의 팔촌이 그랬든 잘 나가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계속 잘 나갑니다. 실패하더라도 나중에 보면 꼭 다시 멋지게 변해 있더라고요. 누명을 벗고 본인의 자리가 더 굳건해졌던가, 하던 일에서 방향을 틀어 다른 일을 개척해 더 잘난 사람이 되어있던가. 그런데요, 선택받은 사람을 관찰해본 적 있나요? 잘난 결과물만 보지 말고 그 과정을 보면 숙연해지는 게 다반사인 것 같아요. 남들 놀 때 할 일 챙기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도맡아 하며 보통의 사람보다 몇 곱절 열심히 산 흔적은 보상받게 되는 게 삶의 이치가 아닐까 합니다. 얄미워할 수 없는 게 내가 생각해도 적임자가 딱 그 사람이니 어쩌겠어요. 부러우면 나도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꼼수 부려 봤자 안된다는 건 이제 알았거든요.
‘왜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 걸까, 나나 저 사람이나 개찐도찐인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그 자리에 설 능력을 갖추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나 이번에 진짜 열심히 해서 이 정도면 잘한 것 같은데 왜 알아주지 않는 거야?’라고 생각하기보다 평소에 자기 책임을 다하고 남들과 잘 어울리며 선행을 베풀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공자님 말씀처럼 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 능력이 없음을 걱정하며,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음에 애를 태울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세상이 자기를 알아줄 것인지를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겠죠. 자기 능력을 키우는 일,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수신(修身)을 착실히 하다 보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익히 알고 있지만, 실행의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기 부지기수입니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이루어지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망친다. 말이 미리 정해져 있으면 실수하지 않고, 일이 미리 정해져 있으면 곤란하지 않게 되며, 행동하는 것이 미리 정해져 있으면 탈이 없고, 방법이 미리 정해지면 막히지 않게 된다. —중용
걱정하기 싫으면 준비해야 하는 법입니다. 비전을 갖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직시했다면? 주요 목표와 단계별 목표를 수립하고 구체적 실행방안을 설계해야지요. 우선순위를 정하고 하나씩 일을 진척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성취의 길로 이끌어가려면 내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겠죠. 믿음은 한 번에 생기지 않습니다. 공들인 시간과 작은 성취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며 자기 신뢰에 바탕을 둔 자신감이 생겨요. 자기 자신과 자신이 선택한 일을 경영하는 자기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숲을 봐야 한다고 하죠? 큰 그림에서부터 세세한 마감질까지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조망을 갖지 못하면 목적의식이 불투명해져요. 동시에 매 순간 신중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기대하기 어렵고, 심지어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중용』에서는 준비성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다. 착오가 생기지 않게 ‘말’을 정하고, 곤란을 피하기 위해 ‘일’을 정하고, 탈나지 않게 ‘행동’을 정하고, 막히지 않게 ‘방법’을 정한다고 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어르신의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겠다 투정하기 보다 몇 번쯤 실행에 옮겨봄이 어떨까요?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의 진리를 체감하리라 믿습니다.
군자의 도는 비유하면 먼 곳에 가는 것은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과 같고, 비유하면 높은 곳에 가는 것은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과 같다. —중용
“등고자비(登高自卑)”,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격언입니다. 공든 탑을 쌓으려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정성들여 쌓아야 합니다. 허황된 것은 모래성과 같이 금세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빈틈없이 만들어야 건실합니다. 마라톤을 할 때 멀리까지 가려면 시작부터 철저히 설계하여 완주를 목적에 두어야 하는 것처럼요. 결과적으로 실행력이 빛을 발하려면 가장 가깝고 낮은 데서부터, 즉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까운 나로부터 시작하여 널리 그 영향력이 퍼지게 되는데 내실을 다지며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껏 ‘도중하차(途中下車)’한 경험이 더 많다면? 이제는 용기를 내어 실행을 거듭할 때입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잖아요. 결과가 어떻더라도 끝까지 해봅시다. 마지막을 모르기에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격언을 마음에 새기고 움직이자고요. 피라미드의 꼭대기는 아무나 오를 수 없죠. 오르더라도 그 위치와 무게에 맞는 일을 지속하는 건 더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나 미약한 처음은 있기 마련이라는 걸 기억하기로 해요. 지금 아무리 작은 존재일지언정 뜻을 품고 정진하면 나의 이상향에 가까워진다는 걸 믿기로 해요. 높은 위치에 도달했다면 겸손하기로 해요. 자, 뜻을 품고 자기 일을 하고 있다면? 철저히 준비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계속 실행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