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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UK Sep 15. 2024

엄마에게 맞고 자라다.

프롤로그.

무슨 이야기부터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고민하다가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래서 제목부터 적고 나니 이렇게 써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제목을 거창하게 적긴 했지만 사실 경찰서에 갈 만큼 맞았던 것은 아니었다.


'훈육'

일명 '사랑의 매'

딱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이 정도였다.


엄마는 초등학교 때까지 나를 매로 가르쳤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머리가 욱신거릴 정도로 맞았다.

등짝 스매싱은 기본이고.


엄마의 손은 굉장히 매웠다.

엄마 말로는 어렸을 때부터 때리면 항상 급소만 때렸다고 하던데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엄마가 때리던 곳은 언제나 나의 급소였다.

특히 엄마는 내 머리를 잘 때렸다.


기억에 남는 엄마에게 맞은 이유 중 몇 개는.

6살 때쯤 엄마가 나를 씻겨주면서 엄마와 아빠의 전화번호를 외우게 했는데 내가 잘 외우지 못하니까 샤워기 헤드로 내 머리를 때렸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엄마가 독서감상문을 써오라고 하셔서 나름 열심히 적었는데 엄마 눈에는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내 방문 뒤에서 머리를 10대 정도 맞은 것 같다.

그 외에도 밥 먹다가 조금만 투정 부리면 바로 머리를 가격했다. 머리를 다 풀어헤치고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손도 매웠지만 엄마는 힘도 굉장히 세다. 그냥 센 정도가 아니다. 건장한 남자 2명이서 들어야 하는 10단 유리 서랍장을 엄마 혼자 매고도 전혀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어쨌든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매가 되었다. 정확히는 그 순간 엄마에게 보이는 물건들이.

옷걸이, 파리채, 걸레봉, 야구방망이, 자, 효자손 등긁개, 어디선가 주어온 나뭇가지, 나무 막대기 등등...

사실 매가 얇을수록 더 아프고 상처도 오래갔지만 엄마한테는 그런 게 통하지 않았다.

어떤 매보다 손이 가장 아팠으니까.






잘못을 하면 엄마는 나를 맨바닥에 무릎 꿇게 하고 손을 11자로 들게 했다.

1시간 후, 엄마는 항상 먼저 물었다.


"몇 대 맞을래? 네가 정해. 네가 정했으니까 딱 그만큼만 맞아. 억울하지 않지?"


억울하지 않냐고?

엄청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 억울하고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다.


억울하지 않냐는 말을 듣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매정한 사람이다.

우는 순간,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 뭘 잘못했는지는 알아?"


내가 웅얼웅얼 대답하면,


"똑바로 대답 안 해???" 하고 소리 지른다.


분명 잘못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왜 맞아야 하지?

왜 나는 여기서 손을 들고 무릎 꿇고 있지?

왜 엄마는 이렇게 몰아붙여서 소리를 지르고 있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마 이런 태도들이 엄마 눈에는 더 불손해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혼난 이유들.

하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엄마가 나를 때리던 공간의 분위기, 숨소리, 소리치는 화난 목소리.

엄마가 날 때리면서 지키고 싶었던 것들은 무엇일까.

그저 화풀이는 아니었길 바란다.



엄마에게 혼나거나 싸울 때면 항상 했던 생각이 있다.

'어떻게 말해봤자 맞기밖에 더 하겠어? 설마 죽이진 않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아마 중학교 때부터 나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걸까.

그때의 나는 자아가 아직 생성되기 전이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 때리지 않게 되면서 나는 깨달았다.

맞는 것만이 답이 아니구나. 대화로도 해결 가능하구나.


하지만 이걸 어디에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멍이 들거나 입술이 터지거나 피가 날 정도로 맞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묻어둔 이야기. 딱 그 정도인 이야기이다.



















epilogue.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날,

엄마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00아, 엄마가 미안해."


"네?"


"엄마가 그동안 너를 때렸던 거. 미안해."


"..."


"이 사과 한 마디로 너의 상처가 다 없어지지는 않을 거야. 네가 이해하고 인정해 줄 때까지 엄마가 사과할게. 너를 때린 건 엄마 잘못이야."


"네..."


"엄마가 미안해."


나는 한순간 눈물이 나왔고, 이제 와서?라는 생각과 애초에 미안할 거 때리지 말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엄마가 사과를 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고, 나조차도 느끼지 못했지만 난 내 생각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았다는 걸 느꼈다.


엄마의 그 사과는 고등학생까지 이어졌고, 중학교 때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그 후로 나를 때리지 않으셨다.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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