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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UK Sep 22. 2024

나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빠의 개인주의

항상 쓰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빠는 딸바보라는 소리가 있지.

그게 바로 우리 아빠다.

우리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딸이었으면 하고 바라셨다고 한다.

첫 아이는 딸로 낳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태어난 나는 아빠가 참 좋아하셨다고 한다.

내가 아기일 때 아빠는 일하다가도 내가 눈앞에 어른거려서 얼른 집에 오셨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없을 때지만 그때는 행복했겠지?


하지만 자아가 생기고 커가면서부터 난 아빠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아빠가 "싫다"의 감정은 아닌 것 같다.

그냥, 그저. 같이 있으면 그냥 별로다.

아빠와 단 둘이 같이 있는 분위기, 느낌, 표정, 말투 등 편안하지 않은 것투성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상상만 했는데도 벌써 어색하다.


내 친구들은 보통 아빠와 잘 지내는 편이다.

아빠는 여전히 나를 정말 예뻐하신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말을 하루에 몇 번씩 할 때도 있으시고, 내가 뭔가 잘하면 칭찬도 해주시고, 잘못을 해도 내 편을 들어주신다. 내가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 게 미안할 정도로.


이쯤 되면 이유가 궁금하겠지?

답은 제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아빠는 굉장히 가부장적이시다. 아빠는 시골에서 태어나셔서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어느 정도 이해를 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너는 여자니까 밥을 잘해야지."

"너는 (여자니까) 청소 같은 거는 엄마한테 잘 배워라."

"나중에 시집가면 다 할 거니까 미리 배워."


이런 말들로 남동생도 있는데 나만 시킨다. 청소든, 밥이든, 뭐든.

물론 내가 아빠가 말한다고 다 듣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다.


이건 그래도 아빠가 어쩔 수 없이 자란 환경이 있으니까 이해해 보겠다.


아빠는 또 항상 부정적인 말로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걸 어떻게 하니,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후회한다, 그건 안될 것 같다, 그러다가 실수한다, 그게 되겠냐?, 네가 얼마나 잘하겠다고...

뭔가를 말하면 아빠는 항상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안 좋은 쪽으로만 결론 낸다.

그 점이 참 못 됐다.

여러 번 이야기해 봤지만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빠랑은 뭔가를 이야기하기가 싫다.

어차피 안된다고 할 건데.

어차피 안 좋은 말만 들을 건데.

내가 굳이 아빠에게 말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래, 여기까지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냥 아빠랑은 대화를 줄이면 되니까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감정으로 판단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 가장 싫은 부분은 "아빠의 개인주의"이다.

아빠의 개인주의.

거창한 그런 뜻의 개인주의는 아니고 내가 내린 정의는 "가족 말고 자신만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개인주의라고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소한 거지만 여행을 가면 가족사진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 사진을 찍는다.

나의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든가 나의 꿈에 대해서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리고 20살까지 키워주면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이제 다 키웠으니까 혼자 알아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엄마가 내가 있는 기숙사로 나를 데려다주는 걸 이해를 못 하신다. (기숙사까지 차로 2시간 거리)

뭔가 도와줄 상황인데 가만히 앉아있을 때가 많다. 도와줄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말로 해야 그제야 조금 도와주신다.

지금은 아니시지만 5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차가 두 대셨다. 스포츠카 하나, 출퇴근용 하나. (엄마차는 따로 하나 있다. 그래서 항상 차가 3대였다.) 아빠의 차는 내 기억이 아니라 아빠한테 직접 물어봐서 아빠 입으로 말씀하셨는데 총 23번 차를 바꾸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많이는 1년에 두 번 정도 차를 바꾸셨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집은 절대 차가 3대 있을 정도로 잘 사는 집안이 아니다. 절대. 그저 아빠의 욕심이다. 아빠는 되팔 수 있는데 무슨 문제냐고 하시는데, 유지비, 양도세, 각종 세금... 스포츠카는 워낙 고가라서 일반 승용차에 비해 유지비가 많이 나갔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몇억짜리 차를 우리 집안 형편에 어떻게 살 생각을 한 걸까. 그거 살 돈으로 더 좋은 집, 더 좋은 곳에 갈 생각은 안 해 보신 걸까.



아빠는 내가 성인이 되고 더 심해지셨다.

내가 요새 아빠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거다.

이제 다 컸는데 네가 알아서 해라.

알아서 뭘 어떻게 하지?

나 고작 스무 살인데. 이제 뭔가 배워야 하는데.

아빠는 내가 다 큰 어른처럼 보이는 걸까.

아니면 내가 철이 없는 걸까.


엄마에게 배울 수 있는 것과 아빠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엄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나를 도와주지만 아빠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쩔 때는 이럴 거면 자식은 왜 낳았지 같은 생각이 든다. 그냥 혼자 살지.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언젠가 아빠에게 나의 진심을 이야기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pilogue.


언젠가 아빠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빠. 아빠는 왜 이렇게 가부장적이에요?"


"아빠가 가부장적이라고? 아빠가?"


"네."


"네가 진짜 가부장적인 사람을 못 만나봐서 그렇구나. 너희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니까 그런 거죠."


"(내 말은 안 듣고) 나 때는 말이야~ 할아버지가~ 여자는 무조건~~~"









그리고 또 다른 날에는.


"차를 왜 사세요?"


"이거 다 영업용이지~ 스포츠카 가게에 전시해 놓으면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그리고 아빠 차 모임 나가서 장사도하고."


"거짓말. 그냥 취미잖아요. 빚이랑 이자 내면서까지 하는 제일 비싼 취미."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어차피 그거 다 차 팔면 없어질 건데. 너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


나는 그 이후로 아빠에게 하는 질문을 멈췄다.

뭔가 계속 질문을 할수록 솜사탕 씻는 너구리가 되는 기분이라.







하지만 언젠가는 질문할 수 있을까?

“아빠는 왜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이야기들을 저에게 안 해주세요? 왜 저를 그냥 놔두시나요? 전 아직 아빠가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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