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택시
죽음이 나를 덮쳤던 그 새벽,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러 깨웠다. 눈을 뜨니, 친구 다니엘이 내 곁에 있었다. 나는 2박 3일 동안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다니엘은 나를 그 끝에서 구해낸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사방이 암흑으로 뒤덮였고, 나는 짙은 안개 속을 떠돌며 끝없는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공포에 질린 채 어디론가 끌려가는 느낌이었는데, 그때 희미한 한 줄기 빛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빛을 따라가기 시작했지만,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더욱 깊은 어둠에 잠겼다. 그 빛은 좁은 문을 통해 오직 나만을 향해 비추고 있었다. 한 가닥 희망이 보이는 듯했으나, 문 앞에 서 있는 한 인물의 모습이 나타나자 모든 것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을 자아내는 존재였다. 검은 도포와 갓을 쓴 그의 모습은, 창백하게 빛나는 회색 얼굴과 섬뜩한 눈매로 나를 응시하며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마치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듯, 그의 하얀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그 불길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점점 편안해 보였다. 그에게 다가갈수록 더 강하게 돌아가라는 손짓을 내보였고, 그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나는 뒤돌아섰다. 광채가 쏟아지던 찰나의 순간, 나는 문득 깨어났다. 만약 그 문을 넘어섰더라면, 나는 이 세상과 이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흘 전, 새벽 1시경. 집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내 몸은 점점 식어가고, 나는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가족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119에 신고하고 병원마다 전화를 걸었음에도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술이 깨면 데리고 오라"는 무정한 말뿐이었다. 절망 속에서 가족들은 내과 병원을 갓 개업한 내 친구 다니엘을 떠올렸고, 다행히 그의 도움으로 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다니엘은 대학 시절부터 함께 성당에서 주일학교 선생으로 활동하며 인연을 이어온 친구였고, 지금도 내과 의사로 자신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죽음의 문턱을 넘었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입주해 있던 빌딩에는 영상미디어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지점장과 십여 명의 여직원이 근무하고 있었고, 우리 회사도 이곳에 한 층을 임대해 십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었다. 이곳은 매달 열리는 전체 회식이 의무적이었고, 불참 시에는 인사고과나 매장 청소와 같은 불이익이 따랐다. 특히 지점장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특정인을 지목해 술잔을 돌리는 불쾌한 관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달의 회식 비용은 우리 회사가 부담했으며, 나 역시 참석 요청을 받았다. 평소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나로서는 곤혹스러웠지만, 술을 잘 마시는 직원을 흑기사로 데려가며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내가 그날의 희생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잔은 소주잔이 맥주잔에 담긴 폭탄주였다. 지점장은 맥주잔을 소주로 가득 채우고는 짧은 건배사를 던졌다. "원 샷!" 그의 외침과 함께 술이 단숨에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내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지만,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놀랍게도 그 술은 목구멍을 미끄러지듯 넘어갔고, 장을 통과하며 전율을 일으키며 달콤함을 남겼다. 나는 그들의 술잔 세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내가 지목된 희생양임을 깨닫지 못했다. 함께한 흑기사도 이미 포섭된 상태였다.
이십여 명의 직원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며 나와 원 샷을 외쳤다. 심지어 술을 못 마시는 여직원조차 "이사님을 위하여!" 외치며 잔을 비웠다. 그 순간, 나의 이성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술이 술을 부르며 사람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그날, 술잔은 거듭 비워졌고, 나에게는 치사량을 훨씬 넘어선 위험한 주량이 쌓여갔다. 물이든 술잔으로 나와 건배를 한 여직원들도 많았다. 참석자 전원이 권하는 잔을 연거푸 들이키며 신명 나게 떠들어댔다. 흥에 겨운 나는 결국 나이트클럽으로 전원 데리고 2차 회식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화장실 변기 위에 머리를 처박고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성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날의 기억은 마치 안개 속에 가려진 듯, 선명하지 않다. 흔히들 말하는 '필름이 끊겼다'는 경험을 그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 속에서 단순히 '술잔의 노리개'로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내 회식 문화는 상사들의 직권을 남용한 독선적이고 의무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고, 이는 직원들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곤 했다.
그날,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돌아온 사람이 되었다. 그 경험 이후, 지점장의 독선적인 회식 문화는 사라졌고, 회식은 자율적이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직원들 간의 관계도 한층 더 원만해졌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그날의 경험은 나에게 삶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진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노년의 품격을 지키며 매일을 더욱 깊이 있게 살아가려 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 햇살이 내 방을 가득 채울 때마다, 나는 그 소중한 순간들을 감사히 여기며,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삶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경험으로 가득 찬 여정임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그 여정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