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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A 1차를 보고 나서

by Aroana

미래의 계획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핑계로 12월과 1월을 허무하게 날렸다. 2월 중순이 되서야 부리나케 준비하기 시작한 CFA 1차는 사실 시작부터 많은 삐걱거림이 존재했다. 원룸을 갑작스럽게 구해야 했고 생활비도 걱정해가며 온 신경을 시험에만 쏟을 수 없었다. 겨우 안착이 되고 난 3월부터는 멘탈이 문제였다. 겉으로는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으로 비춰졌지만 속은 이미 시커멓게 타버렸다. 놓인 현실에 가득 찬 불만은 토로되지 못하고 묵묵히 쌓인 채 본연의 감정도 돌보지 못했다. 학기를 압박하던 일정의 부담이 이번 시험에도 찾아왔다. 그렇게 내 첫 수험생활은 단지 시험을 떠나 환경에서부터 많은 난이도가 올라가버렸다.


시험 전 날이 되었다. 대전에서 시험장인 일산으로 향하는데 곧 저녁이 되었다. 하루 숙박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곳은 찜질방에서의 취침.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내린 '휴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행동엔 내가 취해왔던 수험생활을 오버랩 시켜주는 은유가 아니었을까 한다. 아니면 진짜 돈이 없었을 지도...


시험을 치르고 나서 느꼈던 감정은 달콤 쌉싸름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단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쌉싸름한 맛이었다. 모든 여정이 끝났다는 의미에서의 달콤함은 후련한 감정이 억지로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감정은 언제든 허무함으로 바뀔 수 있었고 왠지 예상되는 결말을 가질 것 같은 마음에 조금은 가슴이 아팠다. 나는 결과에 느꼈을 감정을 현재시험으로 당겨 혼자 꽤 많은 술을 마시며 나만의 소회를 풀었다.


합격자가 발표되기 까지 두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 첫 한 달은 경제·금융책을 멀리하며 머리를 식히는 시간을 가졌다. 생활비나 벌자는 생각은 야구장에서 맥주를 판매하며 경기를 무료로 관람하는 호사를 누려보기도 했다. 남은 한 달은 과거에 했던 기업분석 보고서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스스로 보고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아직 내 꿈이 완전히 접힌 것은 아니었기에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해보기로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이어 합격자 발표가 나왔고 나는 이전 시험과는 달리 아슬아슬하지 않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또 한 번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래. 처음부터 한 번에 붙는다고 확신하지 않았으니까 12월에 있을 1차에 다시 한 번 몸을 불살라 보자. 분명 그 때는 치러본 시험이니까 훨씬 더 쉽게 느껴질 거야."


1차를 본 시험을 복기하며 아쉬운 점들을 하나씩 나열해 봤다. 그랬더니 나에게 필요한 환경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적어도 5~6개월간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는 생계적 여유, 현재의 원룸이 아닌 꽤 괜찮은 조건의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 요구 되었다. 이 둘을 메꿔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은 사실상 아버지 집, 이외에는 달리 뽀족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절'도 알아보고 이제 갓 결혼한 첫째 누나 집도 고려해 보았을까. 그러나 며칠을 거쳐 머리를 싸매며 고민한 결과 나는 시험을 포기하는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결국 또 2~3백만 원의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꿈마저 위협 받은 것이다. 이때가 참 가슴이 아팠던 것 같다. 최적의 여건에서 공부를 한 번 더 해보고는 싶었지만 도와달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하기 싫었던 자존심 때문에 나는 결국 그토록 바랬던 꿈을 이토록 허무하게 결론 내려 버렸다.


CFA에 도전하지 않으면 애널리스트라는 꿈은 한낱 가루에 불과하다. 더 이상의 기업분석은 의미가 없다. 그럼 나는 다시 앞으로 무엇을 좋아해야 하지? CFA 하나만을 믿고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그럼 나는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하지?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첫 방황이 시작되었다.




PS. CFA 1차를 치르고 한 달이 지날 무렵 썼던 일기다.


2014년 7월 9일,

아... 술 먹어어서 그러나.. 욀케 우울하지?. ~~~~ 짜증난다..

걍 노가다하고 저녁 먹으면서 술을 먹었는데.. 좀 과하게 한 거 같다.

2병 먹었는데..아~~.. 원래 한병이 보통인데... 걍 좀 무리한 거 같다.

노가다 끝나고.. 할게 없어서..

아직 게임빌 기업분석 보고서 안끝났는데... 첨엔 잘했다가 했다가 그 담부턴 걍 하기가 싫어진다.

아침 일찍 일허고 쉬는데... 또 일한다는 그 자체가 그냥 마음에 안든다.

아~~~ 짜증나.. ㅜㅜㅜㅜ

분명 CFA 자격증 때문에 그럴 것이다. 떨어지면 너무 힘들거 같아서..

페북엔 걍 이런저런 애기 올리는데.. 그런거 올리기도 실다. 올릴 기분도 아니라서.. ~~

아~~ 술 제대로 먹었나 보네.. 씌팔..

설 온지벌써 8일 정도 됐는데.. 아~~ 너무 심심하다. 집에와서 씻고 나면 솔직히 딱히 할게 없다. 걍 혼자서 놀것도 없고... 내가 설 지리 잘 아는 것도 아니니까..이것저것 하기가 싫어진다. 이게 나만의 문제인가?..

걍 답답하네...

아~ 소주 2병 먹었다. ㅋㅋㅋ 분명 이 글은 개소리다. 나도안다. ㅋㅋㅋㅋ

걍 자고 담 날에 좀 일찍 인나서.. 게임빌 보고서 마무리 하는게 낫겠지?.

아~~ 자야겟다. ㅋㅋ 나 취한거 같다.

여기서. 갑자기..!!!!!!! CFA 1차 화이팅!! 꼭 붙자!! 붙으면.. 내 20대 청춘 정말 한~~~~~~~~~~~~~~~~개두 안부러워할거 같다.!! 재경관리사 붙은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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