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산 운용사 시험에도 떨어지고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제는 본게임으로 들어갈 시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 CFA 1차, 내 삶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첫 관문이었다. 운용사 시험에 떨어졌을 때 내 위치는 3학년 2학기가 한창일 즈음이었다. 졸업이 곧 현실로 다가왔고 취업은 가진 스펙을 점검했을 때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전공에는 어울리지 않는 금융과 회계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어느 것 하나 성공적인 자격증 패스를 달성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바로 토익의 부재. 토익이 내 모든 진로를 망쳐 놨다 해도 좋을 만큼 형편없는 토익 점수는 점점 영어에 대한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계획상으로 CFA 1차를 시작하는 게 맞았으나 현실적으로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여전히 합격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이 시험을 영어로 친다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영어를 어떻게든 한 번은 정복해 보고 싶은 내 바람은 점점 이상과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시험이 아닌 해외인턴 또는 어학연수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우리과에서 해외인턴에 대한 좋은 제도가 마련되는 중이었다. 전공 교수님은 일정 토익 점수를 충족시킨 학생에게(높은 점수도 아니다. 겨우 700점이다.) LA의 물류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갈 자격을 준다고 하였다. 또한 정부에서도 해외인턴에 대한 지원자체를 활성화 하고 있었다. 결국 또 토익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분명 해볼 만한 도전이었기에 나는 토익의 바짓가랑이를 잡고는 끝끝내 놓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새 금융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게 되었고 책상에는 영어단어와 토익 책이 펼쳐져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CFA 조기 등록에 대한 기한마저 놓쳐 버렸다.(조기에 등록하면 몇 십 만원을 할인 받을 수 있다!) 토익공부를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늘 '이게 맞나?'하는 의심의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시험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토익을 잡았는데 만약 해외 인턴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되지라는 고민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중을 못하니 점수는 늘 제자리 걸음이었고 나는 또 한 번 엉뚱한 상상을 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냥 워킹 홀리데이를 가자. 어학연수는 돈이 없으니까 휴학을 하고 노가다를 통해 돈을 좀 확보한 다음 그걸 바탕으로 호주를 가서 영어 공부를 하고 오자. 그리고 그 때 다시 시험을 준비해보자!"
정신을 또 차려보니 이제는 알바 사이트에서 노가다 일자리를 전전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유는 나름 합리적이었다. 확신이 없는 곳에 인생을 베팅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전공 교수님은 조건이 충족된 자를 '후보'로 추천한다는 거지, '보낸다'는 확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 놈의 토익이 문제이긴 했지만 설령 토익에서 통과가 됐을 때 또 다른 절차에서(대표적인 것이 '스피킹') 탈락할 가능성도 엄연히 존재했다. 그것들은 무시할 수 있는 변수가 결코 아니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돈을 모아 직접 영어권 국가에 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제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마련해 가는 게 훨씬 더 적극적인 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빠른 방법은 단기간에 큰 돈을 모으는 것이고 여기에 부합한 일자리를 노가다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명치를 한 대 세게 얻어 때린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룸메이트 형의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대익아. 뭘 자꾸 빙빙 돌려서 하려고 그래! 너 자격증 시험 준비하려고 했던 거 아니야? 그럼 그냥 그거 준비나 해. 무슨 영어 시험 하나 준비해보겠다고 해외 인턴 생각하고 호주 워홀까지 바라보려는 거야. 노가다 찾을 생각하지 말고 시험 준비나 올인 해"
룸메이트 형의 조언은 내가 다시 CFA를 준비하려고 했던 기본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결국엔 부담을 안은 채 준비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이 시험의 고작 1차를 준비해보겠다고 해외 인턴을 생각하고 워홀을 준비한다는 것은 벌써부터 떨어질 것을 예상한 내 방어기재였다. 겉으로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지만 분명 잠재의식에는 '취업'을 염두 해둔 활동임에 틀림없었다. 대안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지금 내 계획은 너무 무모하고 소모적이다. 차라리 정정 당당하게 붙어보고 떨어지면 그것은 그 때 가서 걱정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떨어지면 안 된다는 배수의 진을 치겠다고 다짐했다.
기존 계획이 산으로 갈 뻔한 것을 간신히 부여잡고 다시 못표 한 대로 돌아왔다. 두렵고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결국 목표한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 때는 마지막 접수 마감 직전이었다. 나는 결국 제값을 다 치르고 나서야 꿈에 그리던 자격시험과 마주하게 되었다.
피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 때 내가 얻은 소득은 모험을 피하지 않았던 자세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