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학기는 누군가를 좋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밖으로는 자격증 공부와 알바로 인해 바빴고 안으로는 아빠로부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후라 내 몸을 추스르기도 벅찼다. 설상 가상으로 아버지는 집에 있는 빚을 갚아야 한다며 지원해주고 있던 치아 교정비를 더는 못 내겠다고 말했다. 이제 막 시작한 교정치료 였는데.. 내가 생활비를 감당한다 한들 그 큰 금액마저 온전히 떠안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아빠와 타협을 하면서 최대한의 도움을 받되, 나머지는 매달 할부로 갚아나가는 방식으로 내가 진 빚을 떠안았다. 자그마치 200만원. 갑작스럽게 내 생활비는 월 40만원이 추가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기말고사 시즌이 찾아왔다. 투자자산운용사 시험에도 떨어지고 중간고사도 망치는 바람에 이번에 보는 기말고사는 무조건 잘 봐야 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시험일지라도 나에게는 달랐다. 이번에도 망치면 국가장학금 혜택이 날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알바를 마치고 터벅 터벅 기숙사까지 바람을 쐬며 걷던 도중 손에 쥔 핸드폰에 진동이 느껴졌다. 두우우웅~ 두우우우웅~
아버지였다. 발신임을 확인하고는 이내 한 숨을 쉬며 화면 속 방향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 아빠의 목이 멘 취중진담을 듣고 나니 그나마 있던 기운마저 빨려 나갔다. 시험을 앞두고 주말에 집에 내려갈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이 까마득했다 내 처지도 당장 코가 석자인데 누가 누굴 위로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어 한참을 교내를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그 때 또 한번 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야, 뻔대기 잘 살고 있냐?"
초등학교 동창 친구인 J였다. 친하긴 하나 사적으로 자주는 연락하지 않는 친구였다. 갑작스런 연락에 마음은 내심 반가웠지만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던 지라 내색은 하지 않았다. 통화가 끝나고 간단히 톡으로 안부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이 단순한 대화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와서 안부를 챙겨 물어준 것 자체가 좋았던 것이다. 이(아무것도 아닌...) 사건을 계기로 J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지게 되었다.
이후에는 J와 간간히 연락만 주고 받으며 나는 내 삶을 영위했다. 3학년 2학기는 무사히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점을 받으며 한시름 고비를 내려 놓았다. CFA 수험생활을 시작할지, 영어를 정복할지를 고민하는 와중에서도 계속 J가 생각났다. 어떠한 썸을 타지도, 단둘이 만난 적도, 흔한 그린라이트도 없었지만 자꾸 J가 보고 싶었다. 아마 그 동안 쌓여왔던 외로움이 한 순간에 봇물처럼 터져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하여 나는 기어코 감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일방적인 고백을 하기로...
어느 날, J에게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약속을 잡았다. J는 흔쾌히 동의하고는 다른 동창 친구를 부르려 했다. 나는 할 말이 있다며 둘이 마시고 싶다고 좀 더 노골적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단 둘의 만남이 성사된 후 며칠 뒤, 우리는 근처의 포장마차에 가서 술을 마셨다. 한 두 잔씩 술잔을 걸치며 J가 무슨 할 말이 있냐며 내게 물었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그 때 연락이 왔을 때 너한테 호감이 생겼는데 이후로 네가 좋아졌다고,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그래서 결과는...
충분히 예상되었던 말이지만 그냥 친구로 지내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이 말이 그렇게 서운하게 들리진 않았다. 이 당시 내 행동은 스스로의 마음을 추스리기 위한 일종의 도박수였으니까. 빨리 정신 차리고 '내 길이나 가자'라고 효과 센 약을 주입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보기 좋게 J에게 까이고는 술이나 마시자며 계속 친구처럼 그녀를 대했다. 여기서 나는 끝끝내 힘든 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뭐 먼저 물어보질 않았으니 내가 얘기를 못 꺼낸 것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때 나는 누군가에게 어려운 상황에서 위로를 받는 행위가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술자리를 마치고 다음날이 되니 귀신 같이 J에게 대한 이성 감정이 사라졌다. 뭔가 억눌림이 해소된 느낌? 이기적이게도 나는 일방적인 고백을 통해 스스로의 욕구를 해소했다.
PS.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더 비참한 것 같다. 그거랑 자위랑 무슨 차이지? 지금으로선 그냥 '어리다'는 생각 밖에 안 드는 것 같다. 이 당시 나는 차라리 적당히 오픈해서 위로를 받았어도 괜찮은 아이였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