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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eM Aug 03. 2024

발버둥[1]

‘스스로’라는 것은

독일에서 첫 인연과의 끝남은 많은 걸 바꾸게 했다.

그녀는 이별 후 여러 번 찾아와 다시 만날 것을 청했지만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다시 만나게 되면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는 나의 삶이 그녀의 아래 완전히 종속되어 버릴 것만 같았으니.


집을 자주 비우는 사이 내 룸메이트이자 오랜 친구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 그의 여자친구는 비어있는 나의 공간을 채워줬고, 이별 이후 다시 돌아온 나는 오히려 불청객의 입장을 받았다. 친구는 오히려 다시 으쌰으쌰 하자는 분위기였지만 그의 여자친구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나 보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었다. 남자친구와 단둘이 있고 싶을 텐데 친구라는 사람이 갑자기 둘만의 공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니 불편했을 테지.


나는 첫 인연의 경험이 꽤나 충격적이었고 이렇게 살다 간 나 스스로는 딛고 일어설 수 없는 인생 패배자처럼 살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독일까지 약 6년간 같이 지내온 친구를 두고 혼자 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 살 때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보증금을 낼 목돈조차 없었기에 언제나 남의 집에 얹혀 살 듯이 지내왔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혼자 살 집을 구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도 첫 인연동안 알게 모르게 늘어난 내 독일어 실력과 어느 정도 파악이 된 독일 생활이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시안에게, 그것도 직업조차 없는 젊은 청년에게 집을 구하는 것은 아주 힘들었다.

나를 소개하는 장문의 글을 준비해 여러 군데의 이메일을 보냈고 답이 오는 경우는 손에 꼽았다. 그렇게 보낸 이메일이 300통이 넘을 때쯤, 아르바이트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집 얻으려고 이메일 보내셨나요? 혹시 오늘 당장 시간이 되나요? 집주인이 당신을 만나보고 싶답니다. “

나는 소중한 기회인 줄 알면서도 일하는 중이라 당장은 갈 수 없다 하였다.

“일 끝나고라도 괜찮답니다. 일 마치고 오세요.”

영업시간은 오후 11시까지였고 나는 겨우 찾아온 기회가 혹여나 놓칠까 문자에 날아온 주소로 향했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기에 굉장히 큰 도시인 편인데, 중심지를 제외하고 외곽으로 나갈수록 오히려 시골 분위기에 가깝다. 내가 찾아가는 곳도 점점 나무가 많아지며 굉장히 한적한 동네였다. 퇴근 후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고 생각보다 한적한 시골 분위기에 돌아갈 차편은 이미 끊겨있더라. 그래도 집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차 그 야밤에 집주인을 만났다. 그는 이미 이사 갈 준비가 끝났는지 집은 싹 비워져 있었고 에어매트리스 하나 깔고 그 집에서 나를 기다리며 하루를 더 묵으려 했다.


“원래 오늘 이사오기로 한 세입자가 갑작스레 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급하게 연락을 했어요”


이런 경우도 있나 싶었다. 집은 혼자 살기에 충분한 크기였고 교통이 조금 애매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하자 하였고 건물주가 지상층에 거주하니 지금 보러 가잔다.

그렇게 만난 건물주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셨는데 집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시는지 현관문부터 담배 찌든 내가 자욱하더라. (독일은 자가면 집에서 흡연하는 것이 문제가 안된다)


할아버지의 독일어는 역시나 너무 어려웠다. 지역 방언이 섞인 표현과 치아가 몇 개 안 남아 새는 발음이 더해져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20여분이면 끝날 내용이 이해하고, 되묻고,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원래는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듯이 작성한 계약서는 굉장히 위험한 요소가 다분한데,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스스로가 정직하게 하려 하는 스타일이셨고 심지어 보증금도 받지 않았다.

“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청구하면 되지! 껄껄껄 걱정 마!”

아주 쿨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렇게 한국도 아닌 독일 타지에서 나 스스로 처음 구한 혼자만의 공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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