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리 Jan 01. 2024

내가 있는 환경을 탓하지 말기

시험, 취업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실제로 원어민과 대화하고 어려운 단어가 아닌 쉬운 단어로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영어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아예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회화를 잘하더라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는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질 수 밖에 없고 내가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영어로 바뀌는 일은 없기 때문에 가끔이라도 벗어나는 행동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전까지 나는 무조건 “회화”를 하려면 내가 배우는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에 가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믿어 왔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한국에서 노력해도 한계가 있고, 여기서 계속 있는 이상은 내 수준이 How are you? 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지니고 있던 믿음이 깨진 계기는 저번에 글에서 언급했던 유튜버분 덕분이다.


나는 정말 기본적인 회화(자기소개 하면 더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수준)는 한국에서 어찌저찌 할 수 있겠지만 원어민이 사용하는 말이나 뉘앙스, 속도, 발음 같은 정작 정말 중요한 것들은 배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민을 가거나 외국인과 결혼을 했어도 영어를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 믿음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튜버분이 한 공부를 보면서 나는 저정도로 노력해보지도 않고 왜 할 수 없다고 단정 지었던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은 회화가 원활해진 지금까지도 자신 주변 환경을 영어로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하셨다. 밥을 먹을 때 미드를 보고, 유튜브를 볼 때도 영어 브이로그를 시청하는 등 최대한 할 수 있는 선에서 귀에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영어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 있든 해외에 있든 말이다.


그러면서 왜 외국에 살고, 외국인과 지내면서도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본인의 주변 환경을 한국어로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외로우니 교회를 가서 한국인을 만나고, 아직 서투른 회화가 겁나서 한국인을 찾아 다니고, 알아 듣지 못하는 언어가 무서워 한국 예능과 드라마를 보면서 내 주변을 외국에 있지만 한국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경험을 읽고, 들으면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영어로 가득 찬 세상을 한국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한국어로 가득 찬 세상도 외국으로 만들 수 있겠구나, 하고. 외국 예능을 보고, 드라마와 영화를 시청하고, 팝송이나 영어 라디오를 듣고, 내뱉는 문장을 영어로 바꿔서 한번 더 말해본다면 나는 한국일까, 외국일까? 당연히 주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차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배제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나는 외국에서 살지 않아서 회화가 늘지 않는다고 변명만 하던 내가 과연, 외국에 갔을 때 영어만 쓰고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주변이 영어니까 한국어를 들어도 되겠지! 하며 모든 한국 콘텐츠를 섭렵하겠지. 평소에 안 보던 것까지 말이다. 그래서 탓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있는 이 곳을. 환경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영어로 가득 채워 살다가 기다려온 기회가 와서 외국에 나갔을 때, 서있는 그곳을 낯설게 느끼지 않고 말하고 싶다.


아, 똑같네. 한국이랑.

이전 08화 일단 시작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