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절대로, 다시는 눈치 보지 말 것

by 김구름

내가 정신과 약을 먹은 건 총 두 번이었다.

한 번은 대학 시절 수면유도제로 잠을 자기 위해서였고, 또 한 번은 창업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였다. 공황이라 함은 죽는 경험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 영어로 패닉 어택(panic attack)이라 하는 공황 발작은 갑자기 시작되는 단기간의 극도의 고통, 불안, 공포감이다. 공황은 불안과 공포를 조절하는 뇌의 구조가 기능적으로 이상 증상을 보일 때 나타난다. 쉽게 말하면 알람이 고장 난 것이다. 집 안에 무언가가 불에 타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면 집주인은 알람을 알아듣고 불을 껐어야 했는데 이 망할 놈의 집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방 안 온도만 높여놓고는 그냥 덮어 두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은 계속해서 더워졌고 이제 이 방은 더 이상 온도를 높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젠 멀리 있는 작은 불씨만 봐도 언제든 물 폭탄을 쏠 준비가 된 것이고 그렇게 한 바탕을 쏘아버린 것이다. 급격한 공포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근데 궁금했다. 누구도 나에게 칼 들고 협박하는 이가 없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 왔던 것일까?


대학교 때 나를 포함한 우리 전공 동기들은 이른바 '양아치'들이었다.

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내 친구들이었다. 밤새는 것에 익숙하고 술 마시며 영화나 보고 게임이나 하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 중 하나였는데 사실 어쩌면 그들 중 제일가는 한량이었을 수도 있겠다. 겉으로는 어떤 대단한 미션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공부하는 경영이나 전산전자를 공부하고 싶지 않다며, 내 꿈은 크다며, 세상에 없던 작품을 만들겠다며 큰 포부를 가지고 영상이라는 전공을 선택했지만 사실은 그냥 선배들이 노는 게 재밌어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학교 수업은 재밌었다. 그러다 내가 호주로 도피를 다녀온 이후, 그러니까 4학년 즈음부터 해서 진로 고민을 시작했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해서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 늦게 현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게다가 난 태어나기를 약하게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말라깽이였다. 약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덕에 성실해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시간을 맞춰서 크고 작은 알록달록한 약을 먹었다. 어린이었지만 씩씩했다. 쓰디쓴 약도 잘 먹었다. 날짜 맞춰 병원에 다녔고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을 잘 지키는 착한 어린이였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했다. 그러니 내가 억지로 무언가를 했어야 했다면 누구보다 금방 아팠고, 우리 부모님은 그런 나를 가엾게 여기셨으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두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다 큰 나는 이제야 현실을 깨달아 버렸는데 능력은 없었고 몸은 약했고 착하기는 해야 했다. 착한 어린이는 착한 성인이 되었고 그것은 강박으로 바뀌었다. 우리 가족의 모든 짐, 그리고 가족의 친구의 사돈의 팔촌의 모든 짐까지 왠지 내 몫 같았다.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졸업을 앞두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했다. 공기업, 사기업, 창업 준비, 대학원 준비까지. 나는 성실하게 임했지만 하루도 즐겁지 않았다. 나는 거의 매일을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공부했다. 새벽같이 신촌, 강남으로 스터디를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7시, 신촌 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쓰러졌다. 영어 논문을 읽던 중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고, 나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았고,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숨이 안 쉬어졌다. 눈앞이 마치 오래된 TV 화면이 지지직 거리며 캄캄해졌다. 숨을 쉬기 위해 헐떡거렸다. 지하철 칸에서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멀어졌다. 핸드폰을 봤다. 17초.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전 바를 잡았는데 그 정차역과 정차역 사이가 너무 길었다. 12초. 토할 것 같았다. 4초.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밖으로 던져지다시피 해 쓰러졌고 의식을 잃었다. 나는 부른 적 없는데 주황색 옷을 입은 119 구급대원이 나에게 말을 걸고 나를 들어 어디론가 데려갔다. 의자에 앉았었나? 누워있었나? 구급차를 탔나? 택시를 탔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근처 정신과의원 상담실에 앉아 있었고 울고 있었다.


절대로, 다시는 눈치 보지 말 것.

나에게는 이 날의 기억이 거의 없는데, 구급대원의 주황색 옷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우울증 검사와 각종 스트레스 검사가 마쳐졌다. 검사가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놀라서 한달음에 나를 데리러 왔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많은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나도 몰랐다. 사실 나는 내가 나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해 본 적 없는 일이라서, 부모님이 싫어해서, 사람들이 흉볼까 봐, 욕을 먹을까 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가족을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생각도 하지 말고, '현진아, 네가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네가 행복하고 건강하면 그것만으로도 기쁨이자 자랑이니 네가 행복한 일을 찾아서 하라고. "네, 그럴게요." 나는 약속한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 너무 많은 눈치를 보고 있었구나. 자꾸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도대체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 사람들은 단체로 정신을 잃어간다.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물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틈만 나면 회피하고 숨어버린다, 그게 편하니까.


피하지 말고 살자.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내가 해본 적이 없는 영역이라서, 부모님이 싫어하셔서, 사람들이 흉볼까 봐, 실패할 것 같아서 같은 같잖은 핑계는 대지 말자.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은 아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퇴사하고 창업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나는 말한다, 하라고. 하지만 그들은 하지 않는다.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오면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 우리 엄마가 너를 싫어해, 이런 드라마 같은 말은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애들이 아직 어려서요, 내가 좀 더 어렸으면 시도했을 텐데, 강남에 집 한 채는 있어야 결혼을 하지, 30대 사무직 연봉 평균이 얼마인가요? 이 얼마다 모두 값싸고 부질없는 것들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우리, 남에게 본인의 결정을 대신 내려달라는 무책임한 실수는 하지 말자. 내 결정은 몇 안 되는 나의 것이다. 각자의 삶에 대한 단순하고 책임 있는 태도를 가지자. 우리는 다른 이들의 감정을 너무 존중한 나머지 나의 것을 잃어버린다. 그런 바보 같은 실수, 두 번은 하지 말자.

keyword
이전 03화사기꾼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