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장님 따님.
어렸을 때 나는 보통 이렇게 불렸다. 아버지 회사 사옥에 들어갈 때나, 아버지 친구분이나 손님을 만날 때, 아버지가 직원들을 우르르 데리고 우리 집으로 놀러 올 때, 직원들과 체육대회를 할 때 나는 '학생'이나 '여자애'가 아니라 '사장님 따님'이었다. 여기는 사모님이시고, 아, 여기는 사장님 따님. 그 시절에 원격 사업으로 꽤 이름을 날리셨던 아버지는 한 때 직원 수십 명을 이끌고 IMF를 이겨낸 대단한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였다. 아버지는 성실한 분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또 출근 시간 전에 도착해 있는 촉망받는 CEO였다. 밤늦게까지 동생과 내가 아버지를 기다리다 잠들면 아버지는 새벽에 집 앞에서 파는 통닭을 사서 우리를 깨웠고 그렇게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아버지인지 통닭인지를 반기며 어린 밤들을 보냈다. 아버지 사업은 날로 성장했고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다 아버지는 배신을 당했다. 무려 40년 지기 후배에게, 무려 함께 사업을 만들어가던 재무이사에게.
사기꾼의 딸.
한 순간에 내 이름은 이렇게 바뀌었다. 재무이사는 아버지의 도장과 신분증, 공인인증서, 명의를 도용해 수많은 서류에 거짓말을 했다. 그는 새로운 사람들과 조직을 꾸려 새로 생긴 돈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했고, 그들끼리 세금계산서를 돌렸고, 가정이 있는 사람은 위장 이혼을 서슴지 않았고,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에게 개인사업자를 등록시켰다. 그 조직엔 변호사가 있었고 전과자가 있었고 다른 회사 대표들이 있었고 그들의 거짓말의 꼬리는 길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표이사였다. 법원은 대표이사가 회사 안에서 일어난 이 작당모의를 몰랐을 리 없다며 아버지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그렇게 아버지는 많은 사람의 돈을 빌려 횡령을 한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에게는 집에 한 푼 챙겨줄 돈이 없었고, 그렇게 징역을 살아야 했다.
어머니와 동생은 생면부지의 채권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울었다.
끔찍한 나날들이었다. 내 남편, 우리 아버지를 제발 용서해 달라고 했다. 어머니와 동생은 자신의 잘못도, 아버지의 잘못도 아닌 것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느라 여러 날을 울었다. 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는 나를 호주로 도피시켰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그때 당시 가장 빠르게 나오는 해외 비자였으므로 그렇게 나는 갑자기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나는 어머니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나는 대학교 3학년, NGO에서 일 년 간의 인턴십을 막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고 그렇게 모은 돈을 난 그 길에 다 썼다. 호주 워홀을 이렇게 절망적으로 오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온갖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외주부터 카페 아르바이트, 싸구려 일식당까지. 가장 오래 일했던 곳은 카페였다. 거기서 나는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사장은 인종차별을 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아시아인 직원들은 매일같이 모욕을 들었다. 어느 날은 손님도 덩달아 같이 인종차별을 했다. 이 가게를 신고하고 싶지만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현금으로 주급을 받았기 때문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곳은 다른 곳보다 돈을 많이 줬기 때문에 나는 다른 곳에 갈 수 없었다. 물가 비싼 시드니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돈이 너무 싫었다. 돈이 아니었으면, 돈에 눈먼 사람들만 아니었으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찔려보니 알겠다. 흉기는 너무 아팠다. 돈 때문에 아빠가 이렇게 됐지. 그 사람들 때문에, 엄마가 그렇게 됐지. 돈 때문에 내 동생이, 내가 이렇게 됐지 다 그깟 돈 때문에. 돈이 죄악 같았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돈을 떠나서 살 수가 없었다.
그것이 좋든 싫든 나는 내 주위의 것들을 돈과 교환해 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져 버린 인간인지라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했고, 일을 다녀오고 옷을 입어야 했다. 내가 원시시대로 돌아가 사냥과 채집을 통해 연명할 것이 아니라면 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망할 게임에 참여를 해야만 했다. 누군가를 죽이고도 모른 척, 숭고한 척할 수 있는 것이 돈이거늘 나는 이것이 지배하는 고약한 게임에 참여할 것인가, 고민한다. 마치 투우장에 끌려나가는 황소가 된 것 같다. 아, 진짜 하기 싫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내가 꼭 돈을 벌어야 할까? 돈을 벌지도 않고 쓰지도 않으면 죽던 살던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아, 그렇게 죽음이 쉬울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잖아. 미쳐버리겠네. 그래, 그럼 해보자. 그럼 이왕 하는 거 이 판에서 제일 센 황소가 되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최선의 방향으로 게임을 해보자. 내가 덜 다치는 방식으로, 그리고 나와 비슷한 이들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덜 다치는 방식으로. 다른 이를 찔러 죽여야만 의미가 있는 게임이 아니라 삶에 무성한 잡초 같은 것들을 깨끗이 제거하는 놀이가 되도록. 조금 더 나은 가치를 위해 돈이 거래되는 구조를 만들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방식으로 돈이 흐르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그때 깨달았다. 씨발, 나는 사업을 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