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말 걸 그랬어

사람들은 나에게 흉하다고 했다.

by 김구름

아토피 피부염은 이제 흔한 질병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 나는 나보다 심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난 동네에서 유명한 '아픈 애'였다.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온 피부가 악어 껍질 같았다. 내 목에는 상처와 딱지들이 덕지덕지 있었고 그래서 목을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피부가 두꺼워 그 사이로 피가 맺혔다. 손 끝이 종이에 살짝 베어도 그 사이로 물이 들어가면 따갑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상처가 온몸을 뒤덮고 있었고 매일 아침 샤워실은 나에게 불길 속 지옥 그 자체였다.


초등학생 때 내 꿈은 잠을 자는 것이었다.

긁고, 피나고, 진물 나고, 그게 상처가 되어 딱지가 생기는 과정을 밤마다 겪었다. 나는 매일 울었다. 어머니는 밤새 내 옆을 지키고 같이 울었다. 한 밤중에도 여러 번, 어머니는 손수건을 냉동실에 넣어 차갑게 하고, 차가워진 손수건을 꺼내 내 온몸을 닦아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부채질을 해 주었다. 어머니는 어떤 특별한 약재를 넣은 물을 큰 통에 받아 끓였고 그걸 욕조에 부었다. 너무 물이 뜨거우면 아토피에 안 좋고 물이 너무 차면 눈물이 피떡이 된 어린 딸이 생 지랄을 해 대니, 어머니는 그 물이 미지근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우리 집 화장실은 참 깊었고, 그 안은 우울하고 고독한 메아리로 가득했다. 그것이 매일 저녁이었다. 전쟁 같은 잠을 치르고 난 다음 날 아침, 이불에는 핏자국이 여기저기 묻어있고 침대엔 밤새 긁어 떨어진 각질과 딱지가 한가득이었다. 어린 나이의 나에게 그것은 더러운 것이었다. 그 더러운 것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나는 이불로 잘 감싸 창문을 열었다. 창문 밖으로 이불을 털어내며 나는 그렇게 내 일부를 버렸다. 나를 버리는 연습을 나는 매일같이, 오랫동안 했다.


현진이 모가지 좀 가려라, 할머니가 말했다.

중학생이 되었어도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하지만 나는 내 목과 팔, 다리를 죄다 가리고 다녔다. 더운 여름에도 카라티와 긴 팔을 입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더 내 피부를 보고 징그럽다는 말을 하게 되는 날이면 그 사람을 죽이고 싶어질 것 같아 사람을 만나는 걸 피했다. 나에게 공중목욕탕은 내 치부를 드러내는 공간이었다. 어쩌다 어머니와 가게 되면 옆에 꼭 붙어 앉아 누구라도 나에게 못된 말을 하지 못하도록 숨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옮겨 내가 혼자라도 되는 순간이면, 행여 누구라도 내 흉한 피부를 볼까 물을 쉴 새 없이 몸에 물을 끼얹었다. 그러다 한 번, 물이 옆 모녀에게 튀었다. 그들은 자리를 비켜 앉으며 "아유, 옮겠다. 다른 데로 가자." 했다. 길을 걸으면 생면부지의 아주머니 한 분이 저 멀리서 뛰어와 내 팔을 잡았다. 당신이 아는 사람이 아토피가 있었는데 어떤 소금물로 씻었더니 깨끗이 나았다며, 학생 너무 불쌍하다, 안쓰럽다 말하고는 유유히 떠났다. 나는 그렇게 내 마음속에서 자고 있는 칼을 다시금 깨워 더 날카롭게, 더 뾰족하게 갈았다. 언제든 그 아주머니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나 같은 이야기를 하고 떠나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수 번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렇게 화를 참는 법을 배웠다. 나이가 들었고 대학에 갔다. "걔 아픈 애 아니야? 다른 사람이랑 팀 하자.", "너 발표하기 어려우면 내가 해줄게." 더 이상 친절인지 차별인지 잘 모르겠는 이상한 말들을 듣는다. 나는 더 이상 화를 내지도, 실망하지도 않는다. 나는 작고 힘이 없어서 말발이 셌지만, 말싸움에 이긴다 해도 나에게 남는 것은 상대를 이겼다는 초라한 우월감과 내 몸에 붙어있는 여전히 흉하고 보기 싫은 피부만 남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한 번 화를 꿀꺽 삼킨다. 너무 많은 화를 삼켰는지 속이 더워진다. 나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내 존재를 항상 숨기고, 가리고, 부정하고, 죽은 듯이 살았어야 했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결핍은 결핍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자연스럽게 나는 아프고 작고 약한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사람도, 동물도, 크고 멋진 것보다 작고 약한 것이 예뻤다. 정신장애인을 처음 만난 건 스무 살 때였다. 그는 학교에서 맛 좋기로 유명한 카페의 바리스타였다.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았고 어느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던 그는 대체로 웃겼다. 그는 조현병을 가지고 있었다. "현진 샘, 왜 늦었어요". 내가 일 분이라도 늦게 도착하는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눈을 옆으로 흘겼다. 난 손님이었는데. 그가 내어주는 커피에 담긴 장난기와 능숙함의 사이를 난 좋아했다. 그가 나와 같다고 느꼈다. 그래, 아픈 것은 나쁜 것이 아니야. 나는 그곳에 학생 인턴으로 채용되어 내 대학시절을 보냈다. 카페는 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청년이 창업한 기업이었다. 여기서 나는 그동안 숨기고, 가리고, 버리고, 부정해 왔던 나를 찾아냈고 확장했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니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은 더 있었다. 그들은 시각장애로, 뇌병변장애로, 노인으로, 약자로 이름 붙여 불려지기도 했다. 나와는 분명 달랐지만 사실 나와 같았다. 그들도 작고 약했고, 웃겼다. 어쩌면 나는 이제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겠다. 작고 약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크고 강한 일들. 심장이 뛰었다.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 : 난 그래도 네가 사업을 해봤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