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라는 나쁜 일
"좋은 일 하시네요."
IR을 나가면 꼭 마지막에 듣는 말은 이 말이었다. 젊으신데 대단하시네요, 존경스럽습니다, 와 함께. 투자자가 자금 투자는 안 하고 마음 깊이 응원을 하겠다고 한다. 참 감사하고도 절망적인 한마디다.
나는 소셜벤처라는 임팩트 생태계 안에 있다.
이 용어가 낯선 이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좋은 일', 그러니까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일로 돈을 벌겠다는 사회적 비즈니스 생태계 안에 있다는 말이다. 정부도, 시장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우리는 사회 문제라고 한다. 기후 변화, 고령화, 저출산, 교육 불평등, 고용 불안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사회 문제를 영리 비즈니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회적 기업의 개념은 1800년대 영국에서 처음 생겨 현재 모습으로 발전되었고 한국에서는 소셜벤처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태생이 그런지라 소셜벤처는 고객의 문제와 수혜자의 문제, 양 측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고 따라서 고객의 문제만 집중하면 되는 일반 회사보다 힘든 것이 맞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투자 라운딩을 돌 때 참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게 돈이 될까요?", "이걸 누가 사나요?", "대기업이 따라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사회적 기업을 안 하면 안 되나요?" 나는 들고 있던 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돈 많이 벌 수 있어요!"를 말했지만 지금은 조용히 생각해 본다. 진짜 나는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나?
착한 게 돈이 될까?
나는 왜 이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는 걸까? 장애인을 위한다는 생각 말고 그냥 나만을 위한 사업, 비용은 줄이고 매출을 늘리는, 직원과 고용 환경과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는, 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차라리 투자받을만한 일은 그런 것일 텐데. 나 혹시 불가능한 걸 가능하다고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사회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 아닐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의 사랑하는 모교는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문장을 학생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내 친구들은 대부분 반으로 갈렸다. '아침마다 침대 이불 개는 것도 못하면서 세상을 어떻게 바꾸냐'와 '한 번 해보기나 할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오랫동안 찾지 못했다.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그걸 내가 할 수 없겠다는 빠른 포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Of course, why not.
"장애인이랑 일해요."
내가 하는 일은 장애인과 하는 모든 일이다. 우리 팀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바라본다. 시각장애인 중 90%가 중도실명인 점, 시각장애 특성상 비언어적 표현보다 언어적 표현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 반복적인 신체 노동이 아닌 지적 근로를 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인터뷰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각장애인을 전화 한국어 강사로 만드는 일자리 개발형 서비스와 교육 콘텐츠를 만든다. 지금은 더 나아가 시각장애인의 생활에도 개입한다. 시각장애인의 웹과 IoT 접근성을 개선하는 AI-IoT Web Accessibility 솔루션을 개발하여 FnB회사들과 PoC를 하고 있다. 투자 없이 매출로 자생 중이며 함께 일하는 고객사가 40여 개, 직원이 26명, 우리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얻은 장애인이 170여 명, 해외(중국 청도)에 지사를 설립하고 현금을 투자하여 글로벌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도 그냥 제일 본질적인 나에 대한 설명,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에 대한 설명은 "장애인과 일하는 사람"이 맞다. 그리고 나는 최근 들어 그때 나에게 '응원하겠다'라고 해주신 투자사 대표님들로부터 '아, 그때 투자할걸'이라는 말씀을 농담처럼 듣게 되는데, 감사함이 참 크지만 동시에 내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알 수 없는 씁쓸함과 아쉬움은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tVN 김** 작가입니다. 김현진 님을 촬영하고 싶어서요."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대형 방송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우리 회사와 나를 담는 한 시간짜리 다큐를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다큐를 이미 알고 있었고 꽤 유명한 프로그램이었으므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2019년 5월, 내가 나온 회차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장애인을 항상 어떤 교육의 수혜자, 복지의 대상자로만 보았지 그 누구도 이들을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자로, 고등 교육의 제공자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20대 어린 여자가 아무도 없이 홀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베트남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쓰러져가는 호텔에 숙박하며 장애인을 위한 수요를 발굴하는 모습이 신기했을 것이다. 방송이 나간 이후로 나는 친구들은 물론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서 연락을 받았고, 길을 가다 알아보는 사람들도 종종 생겼다. 뉴스와 언론사들은 모두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취재했고 우리 회사는 다양한 기사에 실렸다. 나도 신났다. 하지만 나는 금방 현실을 파악했다. 나한테 이건 돈이 되지 못했다. 좋은 일이긴 했지만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구태여 칭찬할 일이 잘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이 시기에 잘한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나는 기쁨에 취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가 살아남고 우리 선생님들을 더 채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잠깐의 유명세와 인기가 아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언론에서 말하는 '좋은 일을 하는 청년'이라 하더라도 시장에서의 투자 가치가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나에게는 사업 자금이 필요했다. 누군가를 채용하고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고 그 일자리를 통해 또 다른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게 내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아쉬웠지만 그것은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려는 일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고 기뻤고 자신이 있었다. 시작도 안 해봤으니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로 했다, 4억을.
1:1 사업기획, 자금, 인사, 조직문화 코칭 이벤트를 기획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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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하고 계시는 창업 고민들을 공유해 주시면 제가 아는 선에서 함께 고민해 드릴게요. 비용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