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을 빌려달라고? 너 누군데?

국가는 누군가의 꿈에 100% 보증을 서 주기도 한다

by 김구름

우리 회사의 첫 주소는 카이스트 경영대학 4층이다.

그게 전부였다. 나에겐 매출도, 직원도, 특허도 없었다. 나는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 지원했다. 특별히 공부를 잘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찍어왔던 점들이 한 곳을 향해 있었던 것이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각종 학회와 스포츠 팀에서 리더십을 자처했고 한국 대학에 입학해 영상과 언론을 공부했다. 학생 인턴으로 몇 년간을 소셜벤처에서 무급으로 일했는데 너무 행복했고 NGO에서 최연소로 인턴 생활을 했으며 UNESCO와 개도국 몇 군데에서 기업가정신을 교육했다. 딱히 대단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카이스트 MBA 면접을 보면서 사업에 대해 처음으로 현실을 마주쳤다. 그때 당시 구상하고 있던 비즈니스를 설명하는 피칭 면접이었는데 "BM이 뭔가요?"라는 너무도 쉬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화가 나 울었던 것이다. 그렇게 면접을 말아먹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잠시 침묵하고 "내년에 또 뵙겠다"라고 했다.

면접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MBA를 가겠다는 사람이 BM이 뭔지, 경쟁사가 누구인지, ROI가 어떻게 되는지, 시장 동향이 어떤지도 대답을 못하다니. 게다가 '난 꼭 이 학교를 가야 하니, 내년에 또 지원하겠다'는 이 버르장머리 없는 말은 어디서 배운 것이란 말인가. 나는 이 아찔한 면접장을 나오면서 직감했다. 불합격이겠구나. 나는 어디서 배워야 하나. 하지만 2주 후 나는 전액 장학금 합격 소식을 받았다. 한참 후에 나는 지도 교수님께 나를 합격시키셨던 이유를 여쭈었고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는 어떻게든 이 사업을 하긴 할 것 같았다.


우리 동기들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학기가 시작한 후부터 바로 그들은 투자자들을 만나며 피칭했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았다. 5천만 원에 6%, 1억에 10%, 2억에 10% 등등 사업 규모와 대표이사의 경력 등을 반영해 투자자들은 기업 가치를 심사했다. 동기들은 여러 날을 투자자들과 미팅도 하고 식사도 하고 술도 먹고 왔는데 나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는 '좋은 일 하시네요' 소리만 듣고 오는데 이들은 돈을 받고 왔다. 투자금을 받은 동기 대표들의 어깨는 하늘로 치솟았다. 나는 기다리기만 할 수 없어 대출을 알아봤다. 마침 벤처기업들에게 보증서를 내주는 사업이 있었다. 정책금융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이 운영하는 신보 NEST라는 사업은 스타트업에게 엑셀러레이팅과 신용보증을 지원하는데, 전체 규모 중 10% 미만으로 소셜벤처도 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이건 투자가 아니라 융자였다.


나는 5천만 원도, 1억 도 아닌 4억을 달라고 했다.

대출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이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이 걱정했다. 네가 그 돈을 갚을 수 있겠느냐, 그 돈을 빌릴 수나 있겠느냐 했다. 나는 26살이었고 경험도 없고 개발자 출신도 아니어서 투자자들도 나에게 1억을 베팅 안 하는데 더 까다로운 금융기관이 4억을 빌려주겠느냐,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나는 온갖 힘을 다 해 내가 누군지, 내가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 이 사업은 돈을 어떻게 벌 수 있으며 언제 갚을 수 있는지, 따라서 나에게 4억이라는 돈을 빌려주는 게 왜 타당한지를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하고 또 발표했다. 장표를 수십 번을 고치고 몇 날을 밤을 새웠다. 결국 최종 선정이 되었고 신용보증기금의 100% 보증서를 받았다. 김현진이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도 우리 기관이 이 돈을 대신 100%를 갚아주겠다는 증서다. 이 서류를 가지고 나는 안전한 1 금융권 은행에서 4억을 빌렸다. 이렇게 나의 첫 사무실과 첫 금융으로 우리 회사는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를 심사하셨던 차장님께 나를 선정하셨던 이유를 여쭈었고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업이 훌륭해서가 아니라(이때 피칭했던 사업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대표님이 용감해서, 어떻게든 되긴 될 것 같았다.


결국엔 사람이다.

나와 함께 입학했던 동기 대표들의 40%는 폐업을 했다. 100억 대 매출을 하는 경쟁사는 임금체불에 경영난까지 겹쳐 소송을 받고 있다. 200억 대 매출을 하는 거래처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섰다. 3년 차 스타트업의 생존율이 50%, 5년 차 스타트업의 생존율이 33%이다. 10년, 15년 넘는 회사들도 생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이제 7년 차인 우리 회사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사실 우리 회사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끝까지 해 내는 그릿, 근성, 끈기, 용감함이 있는 사람이 결국 차이를 만들어낸다. 사업은 변할 수 있다. 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당신이 주식 투자를 한다면 사람을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고 기업을 분석할 때 기업가를 잘 살펴보아야 하며 인생의 파트너를 만날 때도 화려한 배경과 언변이 아닌 사람 자체를 잘 보아야 한다. 당신이 투자를 받고자 하는 기업가라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는 이걸 꼭 해내야만 잠을 자겠는 사람인지, 아니면 투자가 들어오지 않거나 1-2년 배를 굶주리게 된다면 멈출 사람인지. 전자라면 국가는 당신의 꿈에 보증을 서 줄 것이고 후자라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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