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병신아"
시각장애인이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는데, 편견이 사라진 계기가 되었다고 하기엔 그럴듯한 순간도, 멋진 순간도 아니었다. 그가 내뱉은 병신이라는 짧은 두 글자는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는 20대 젊은 남성이었고 우리 직원이었다. 그리고 장애인이다. 휴대폰을 들고 아마도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있던 그는 '병신아' 라고 하며 통화 내내 낄낄 웃었다. 자연스러워 보였다. 갑자기 조금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일부러 그 단어를 안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괜찮은 건가? 장애인이 누군가를 병신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아니, 장애인이 아닌 사람은 누군가를 병신이라고 불러도 되는건가? 전화 너머의 그 사람은 병신일까? 내가 지금 너무 놀란 게 이상한가?
우리 놀러 가자, 내가 말했다.
신용보증기금이 100% 보증을 서 주고 1 금융권이 나에게 돈을 꽂아주던 날, 나는 우리 회사의 첫 번째 직원을 뽑았다. 우리는 여러 회의 끝에 장애인 10명과 비장애인 1명을 더 뽑았다. 갑자기 팀원의 숫자가 늘어났고 우리는 2개월 간 이렇게 저렇게 팀을 운영하다 첫 회사 워크숍을 가기로 결정했다. 총 500만 원의 예산으로 1박 2일, 태안 만리포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나는 이전까지 장애인과 여행을 가거나 식사를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멀리 길게 여행을 하고 온다는 것은 나에게도, 아무런 시스템이 없는 우리 회사에게도 대단한 도전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사전 답사를 부탁드렸고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지, 위험한 턱은 없는지, 식당들과의 이동 거리는 괜찮은지, 침대가 있는지 등을 미리 살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여행자보험을 들었고 버스를 대절했으며 친구들 한두 명씩을 데리고 와 봉사자들을 마련했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된 비장애인 동료는 초면에 휠체어 장애인 동료를 업고 버스에 탔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김밥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수다를 떨었다. 누군가에게 우리는 장애인이 된 이후 첫 직장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 첫 회사 워크숍이었기에 버스 안은 저마다의 기대로 가득했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20-30대가 모였는데 술이 빠질 수 없었다.
우리는 시각장애인 동료들과 섞여 고기를 굽고 소맥을 말아 마셨다. 업무 분장은 쉬웠다. 앞이 보이는 사람은 음식을 했고 보이지 않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술을 따랐다. 나름 회사라고 건배사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노래방 기계를 발견한 동료가 마이크를 집어 들면서 술자리는 2차전으로 돌입했다. 도대체 다들 이 끼를 어떻게 숨기고 살았는지 너도 나도 노래를 부르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노래자랑은 랩 배틀로 변했고 시각장애 남성 동료 두 명이 일어나 국적과 출처를 알 수 없는 프리스타일 랩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 낮에 친구에게 '병신'이라는 단어를 썼던 그 동료는 갑자기 옷을 힙합 래퍼처럼 입고 무대에 나와 마이크에 대고 상대에게 "난 눈에 뵈는 게 없기 때문"에 너를 이길 수 있다며, 조나단의 암살 개그보다 수위 높은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이 평화로운 태안 밤바다에 누군가의 일생 평생 듣지 못할 자학 개그가 난무했다. 이 광경을 처음 본 나와 다른 비장애인 동료들은 어쩔 줄 몰라 얼굴을 붉혔는데 서로 자신이 "더 잘난 병신"이라고 노래하는 우리 동료들을 보고 정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셨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전맹 시각장애인과 술잔을 부딪히며 '짠'을 하고, 연애 이야기를 하며, 끝나지 않는 술 게임을 하면서 밤을 새웠다. 저 멀리 바닷소리가 왜인지 더 크게 들리는 평화로운 밤이었다.
병신이라는 단어를 써도 될까?
20년 전쯤이었나, 장애자의 줄임말로 '애자'라는 단어가 욕처럼 쓰였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그 단어가 정말 나쁜 단어인 줄 알았다.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비하의 표현이자 혐오 단어. 지금도 내 주변에는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써도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비하 표현을 하고 싶지 않은데 장애인 말고 또 다른 마땅한 단어가 있느냐고 말이다. 내 의견은 이렇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장애인인 것이고, 늙은 사람이 노인인 것이다. 동양 사람은 동양인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흑인은 흑인이라 불리는 것, 그러니까 그의 특성을 지칭하는 것뿐이다. 다만, 그 수준을 넘어 그 특성을 가진 인격을 낮춰 부르는 '병신'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 것이 맞겠다. 우리 동료들처럼 본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것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워크숍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난 아침, 숙취는 장애인, 비장애인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우리는 전 날 미리 아침 식사 당번을 정했고 마트 팀은 마트에 가서 음식 재료를 샀는데, 카레를 만들기로 한 시각장애 동료는 정작 중요한 카레가루를 까먹고 사지 않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당일에야 알게 되었고 숙취로 각자 머리와 배를 움켜쥐고 기어 나와서도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특별히 이번에는 한 동료의 어머니께서도 워크숍에 기꺼이 함께 참석해 주셨는데, 그분 덕에 우리는 맛있는 아침 식사로 속을 달랠 수 있었다. 여러 손길을 거친 이 카레 없는 카레는 내 인생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따뜻하고 행복한 아침이었다.
유쾌하고 따뜻하고 건강한 사람들.
우리 동료들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 내내 나는 창 밖을 보고 웃었다. 나는 이 행복이 오래갈 줄 알았다.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