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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달라 Feb 29. 2024

다시 배움

부장님의 가르침


“우리가 하기 전에 배워야 할 것들은 그것을 함으로써 배웁니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다. 분명 교육대학에서 많은 과목을 공부했다. 교육학, 교육 심리학, 발달이론 등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분야의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적용하지 않는 지식은 진정한 지식이 될 수 없었다. 아이들을 관찰하기 바빴던 2, 3학년 때의 짧은 실습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쉽지는 않구나’ 정도의 깨달음으로 끝났다. 4학년 때 이루어진 한 달간의 실습에서는 하루 한 시간 수업 설계를 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버렸다. 배운 것을 적용시켜 내 것으로 만들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들에게는 너무 미안한 일이지만, 나의 배움은 현장에 와서야 시작되었다. 빤히 보이는 나의 서툶을 언제 들킬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이미 나를 간파하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려는 시도를 했다. 위기를 직감하고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교육학 책을 뒤진다고 답이 보이지는 않았다. 나의 스승은 언제나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동료 선생님들이었다.


우리 반에는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에서 달리기를 하는 쌩쌩이가 있었다. 종이 치기 전부터 한쪽 발을 책상 밖으로 꺼내 튀어나갈 자세를 잡았다. 내가 눈총을 주면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어김없이 복도로 나갔다. 쌩쌩이는 얌전히 걸어서 다니는 법이 없었다. 복도는 미끄러운 돌바닥이기 때문에 넘어질 경우 더 크게 다칠 수 있다. 또 갑자기 열린 문이나 다른 친구와 부딪혀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다. 쌩쌩이에게 눈빛으로 레이저를 보내고 또 한 번 다치면 크게 혼내주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날도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쌩쌩이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른 뒤따랐다. 여지없이 달리던 아이는 맞은편의 누군가를 보고 반가움을 표현하며 품에 뛰어들었다. 바로 작년에 담임을 맡으셨던 중년의 부장님이셨다. 쌩쌩이는 부장님 품에 안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선생님, 저 어제도 달리기 1등 했어요!”


“그래? 우리 쌩쌩이 실력이 날로 발전하는구나.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지.”


부장님께서는 아이를 꼭 안아주시며 칭찬해 주셨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쌩쌩아, 그래도 달리기는 운동장에서 해야지.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지내는 곳이니 다칠 수 있어. 선생님도 걱정되니까 달리기는 넓은 운동장에서 하자.”


부장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쌩쌩이도 고분고분 “네”라고 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와 대화할 때는 입을 비죽이며 시원스레 대답을 해주는 일이 없던 아이가 부장님의 품에서는 고분고분하게 대답을 하고 있다니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다. 게다가 녀석의 담임은 나인데 저 애틋한 몸동작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생각했다.


서운한 마음도 잠시, 부장님과 나의 차이점을 찾아보았다. 나는 쌩쌩이의 문제 행동에만 집중해 타박하고 꾸중하기 바빴다. 반면 부장님께서는 먼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셨다. 충분히 마음이 받아들여졌다 생각한 쌩쌩이는 마음 편히 선생님의 조언에 수긍한 것이다. 나도 어느 정도는 흉내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자연스럽게 안아주시는 부장님의 몸짓은 여전히 나에게는 어려운 과제였다. 나는 부장님께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부장님, 어제 쌩쌩이가 부장님 품에 안겨서 웃는 모습 보고 충격받았어요. 쌩쌩이도 그렇지만, 부장님께서는 어떻게 아이를 편안하게 안아주실 수 있나요? 사실 저는 아직 아이들과 닿는 것이 쉽지 않아요.”


“선생님, 자식을 낳아 기르는 엄마도 모성애라는 것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이가 울 때, 배가 고픈가, 기저귀를 갈아 줘야 하나 관찰하고 하나씩 해결해 주면서 느끼는 만족감이 모성애가 강해지도록 하죠. 우리 반 아이들도 관찰하고 아이의 마음을 알아가려 노력하다 보면 애정이 생길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도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안아줄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부장님의 가르침은 어느 교육학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귀한 교훈이었다. 사실 한 번의 경험으로 나와 쌩쌩이의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일을 계기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다. 아이의 행동은 이유가 있으며 속 마음을 보일 때까지 나는 더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새겼다. 성숙한 선생님이 되기 위한 배움의 시작이었다.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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