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과학자'의 꿈을 키우던 시절 막연하게 내 우상이었다.(대학원을 다니면서는 스티븐 호킹이 우상이었다.) 동상을 찍을 것이 아니라, 옆의 설명을 찍었어야 했다.
분말이 다 녹지 않은 물잔의 밑바닥, 김종완.
29p
옆에 있던 D가 식당 뒤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고 내게 말했다.
"일 끝나고 담배 피우나 봐."
나는 그 말이 무척 일상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곧 나와는 멀리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혼자 집에서 내 나름대로 일 같은 걸 할 뿐이어서 출근, 퇴근이 없고 무엇보다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이다. 일이 끝난 뒤 담배를 피우는, 어디서 여러 번 본 것 같은 그 일상은 사실 나는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상이다. 어느 날 내가 그걸 일부러 해본다면 내게는 특별한 사건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신기하다. '일이 끝나고 담배를 피우는 상황'을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정말 나도 일상적인 말이라고 생각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