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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마 Dec 10. 2023

서울대에 가고 보니 ADHD였다 (2)

ADHD 약 없이 서울대에 갈 수 있었던 이유

미리 밝히건대 이 글에는 'ADHD를 약 없이도 극복하게 할 만큼 효과적인 공부법'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엄마. 나 ADHD래."

"네가 뭔 ADHD야?"

"조용한 ADHD도 있대."


그 말에 엄마가 생각에 잠겼다. TV에서 봤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ADHD라는 새로 등장한 틀에 내가 꼭 들어맞는 인간인지를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너 어릴 때 네 오빠가 너 데리고 나갔다 들어오면 엉엉 울었잖아. 네가 자꾸 차도에 뛰어들어서."


이건 '조용한' ADHD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때 가장 먼저 등장한 얘기이자 지겹도록 들은 내 어린 시절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물론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어째 아무리 얘기해도 애가 정리정돈을 전혀 못 하더라니..."


다음으로 엄마의 탄식이 이어졌다. 견고해 보이던 엄마의 의심이 걷히는 순간이었다. 내심 그 얘기는 안 하길 바랐는데 별 수 없으니 그냥 내 인생을 돌아봤다. 내가 정말 정리정돈을 못 하는 인간인가에 대해 뇌내토론을 벌였다. 학교 다닐 때 내가 사물함을 열면 몇몇 애들이 한 마디씩 하던 게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한 방 쓰던 애들이 나를 빼면 우리 방은 깔끔한 것 같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 말 듣고 '일부러 신경 써서 바닥에 채이는 물건 없게 치웠는데 왜?'라고 생각하며 의아해하던 것도 생각났다. 




그러다 초등학교,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내가 모르는 내 모습에 대한 진술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중학교 생활기록부


나는 가끔 친한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야. 밀크티랑 고구마라떼 중에 뭐 마실까." 그럼 친구가 성실히 고민하다 대답해 준다. "밀크티 어때. 여긴 밀크티가 유명한가 본데." 나는 그 말을 듣고야 내가 정말 뭘 마시고 싶었는지를 깨닫는다. "고마워. 네 말 듣고 지금 고구마라떼가 더 땡긴단 걸 깨달았어." 물론 욕먹는다.


진실 혹은 진심에 반대되는 무언가를 맞닥뜨렸을 때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내면의 반발심을 신뢰한다. ADHD의 떡잎이라곤 도무지 발견할 수 없고 나 아닌 어떤 새로운 인격이 창조되어 있는 것 같은 생활기록부를 봤을 때, 비로소 내가 정리정돈 못하는 인간인 걸 받아들였다. 나를 예뻐해 주신 담임선생님 의견보다는 얄밉도록 예리했던 몇몇의 의견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 같다.




뒤이어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급식실에 가지 못해 도시락을 먹었던 게 생각났다. 소음 자체에 예민하진 않았는데 식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지금은 그 소리를 충분히 참을 수 있지만, 그 무렵의 내게 그 소리가 얼마나 소름 끼치고 고통스러웠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특정 소음에 유난히 예민했던 것이 ADHD 기질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뭇 진지해져서 ADHD에 대한 정보를 뒤졌다.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것도 증상의 하나란 걸 알게 됐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못 다녔다는 전에 들었던 엄마 얘기가 생각났다. 하도 못 일어나니까 포기하고 안 보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 때 다른 애들은 다 부르는 애국가 가사를 몰라서 강당에서 멍하게 서있던 것도 생각났다. 


다행히 학령기에 접어들면서는 아침에 못 일어나서 지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7살에 아빠 사업이 부도나서 우리 집은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새벽에 집에 돌아온 엄마가 무너져 우는 모습을 봤는데 그게 너무 무서웠다. 약한 엄마의 모습이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다. 이제 엄마는 엄마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나는 나를 지켜야겠구나 생각했다. 그 후로 어른스러워지려고 애를 썼다. 아침이면 일어나 늦지 않게 학교에 갔다. 숙제나 준비물을 잊은 것이 없는지 거듭 살폈다. 잠을 자려다 말고 네모난 책가방에 교과서가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는가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내 어설픈 어른 흉내에도 불구하고 아주 감출 수는 없었던 본모습이 있다. 중독에 취약하고 할 일을 심각하게 미뤘다. 나는 지탄받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최대수혜자인지도 모른다. 학교와 사회가 나를 부지런히 채찍질해 주고 감사히도 학교에 오랜 시간 가둬준 덕에 공부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집에서도 공부하고 싶은 맘은 굴뚝같았지만 등 뒤에 침대가 있고 맘 놓고 스마트폰을 볼 수 있는 환경에서 나는 착실히 굴복했다. 인터넷에 지고 잠에 졌다. 엄마가 문을 열면 나는 늘 책 펴 놓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너무 당당해 보였는지 그럴 때면 엄마는 "공부하는구나." 하고 문을 닫았다. 엄마는 내가 검색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덥잖은 인터넷 유머글에 중독되어 제어가 안 됐을 뿐이다. 학교가 아니면 책상에 앉고 나서도 공부를 시작하기까지 시동이 걸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할 수도 없으니 그냥 책상에 오래 앉아있었다. 핸드폰을 보고 웃다가도 정말 즐겁지는 못한 채로. 이러다 곧 공부하겠거니 기대와 자괴감에 찌든 채로.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졸렸다. 집에 와서 더 공부하겠다고 매일같이 책을 몇 권을 챙겨 오면서도 제대로 지킨 날은 손에 꼽는다. 내가 좀 더 현명하고 이성적이었더라면 '아, 안되는구나.'하고 그냥 아침까지 깊이 잠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그러질 못했다. 찬물을 벌컥벌컥 마신 다음 화장실을 일부러 안 간 채로 알람을 맞추고 잠들었다. 내가 불편함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잠깐 자다 깨도록. 이 방법을 꽤 시도했었다. 이렇게 하면 정말 얼마 못 자고 깨긴 깼다. 그러나 그런다고 공부를 하진 않았다. 깨서 화장실 갔다가 도로 자거나 알람을 5분 후로 다시 맞추고 더 자다가 아침까지 자버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할 일을 있는 대로 미루는 사람들은 대강 두 부류인 것 같다. 기어이 좆돼보기 전까지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면서 미루는 부류랑 한번 좆돼보고 나서도 계속 미루는 부류. 나는 후자였다. 고2 때 내신 시험 전날에야 1회독을 시도하다가 좀만 자고 깨야지 하고 잤는데 깨니까 아침이었다. 당연히 등급이 내려갔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서 우어어어 하고 울었다. 나는 서울대를 스스로 가고 싶어하는 학생보다는 학교 차원에서 서울대를 보내야 하는 학생에 더 가까웠다. 얌전히 성적만 좀 내려갔을 뿐인데 교무실에 불려갔다. 그 후론 눈치가 보였고 부담감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오롯이 내 일에서만 무책임하고 남이 관여하는 순간 제법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된다. 만회하려고 애를 쓴 결과 서울대에 갔다. 가기는 갔다.




열 살에 소아우울증 진단을 받아 약을 몇 달간 복용했다. 내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풀배터리 종합심리검사를 했는데 ADHD 소견은 없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스무 살에 풀배터리를 다시 했던 것 같다. 그때도 ADHD 소견이 없었다. 풀배터리 2번 받고 진단을 놓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ADHD라는 확신보다 콘서타의 약효가 너무도 분명하기에 약을 꾸준히 복용 중이다. 아무런 불편도 부작용도 없이 드라마틱한 약효를 느낀다는 자체는 행운이지만, 그러기 위해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 


ADHD 약을 일찍부터 먹었더라면 뭔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생각에 깊이 빠지지는 않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둘 만큼 성숙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 생각에 한번 제대로 빠지는 순간 헤어 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직감 때문이다. 


내가 왜 소제목을 이렇게 지었는가를 이제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사실 나도 그걸 모르기 때문에 그걸 쓰면서 깨닫기 위해 여기까지 쓴 건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성인 ADHD의 대처기술 안내서'라는 책을 읽으면서 대학 가고 망하는 놈들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구나 하고 위안을 얻었던 게 생각난다. 저번에 어떤 분이 내 얘기를 듣고는 "졸업은 했니?"라고 물었던 것도 생각난다. 학점도 말 안 했는데 대강 듣고 개판이었던 걸 단번에 아셨다. 졸업은 했다고 대답하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졸업했니?"


썩 내키진 않지만 한 번은 내 삶을 찬찬히 정리해 볼 필요를 느낀다. 돌이켜보면 생각하기 싫다고 미루고 도전하기 무서워 회피하던 내 습관들이 여태껏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래서 조만간 회상해 정리하고 후회할 건 후회하고 반성할 건 반성해야겠다. 마냥 창피해하지 말고 이 시간과 경험들이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한 큰 힌트가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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