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용도가 분명치 않은 생물. 나이가 들수록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지만 집에 있어도 딱히 하는 일이 없다. 흔히 쓰레기 분리수거용으로 사용한다지만 언제 자신이 분리수거 될지 모르는 생물.”
(정철 지음, 「사람사전」, 허밍버드, 2020, 76쪽)
하는 일 없이 집에 머무는 게 얼마나 좌불안석인지 은퇴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해서 내가 맨 먼저 한 생존용 집안일이 재활용 쓰레기의 분리수거다. 작가의 적확(的確)한 혜안(?)이 그저 감탄스럽다.
플라스틱인지 비닐인지 아니면 종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재활용품 탓에 처음에는 많이 헤맸다. 제대로 하려면 묻지 않을 수 없어 한참 동안 아내를 성가시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지라 나는 언제부턴지 분리수거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그 정도면 됐다 싶었다. 아니었다. 부족했다. 자청해서 청소에 더해 빨래까지 도맡았다.
일은 늘었지만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한결 편해졌다. 기분에 취해 아내에게 서비스한답시고 또 자청해서 커피를 내리고 차를 우려냈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카페 손님처럼 시도 때도 없이 주문했다. 다모(茶母)는 있어도 다부(茶夫)는 없을 텐데. 어쨌거나 커피와 차 내리는 일도 내 집안일 목록에 추가됐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후로 일이 더 이상 늘지는 않는다. 다행이다. ‘분리수거될 가능성 없음’이라는 수지맞는 수확 하나도 야무지게 챙겼다. 추측이 아니다. 아내가 요즘 부쩍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챙겨주고, 가끔이긴 하지만 내 눈치도 보는 걸 보면 확실하다.
ⓒ 정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