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법 지팡이

by 서옹

“읽는 사람의 눈은 꿈틀거리는 문자의 숲을 헤집고 들어간다. 읽는 사람의 귀는 페이지마다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읽는 사람의 입은 반쯤 벌어진 채 말을 잃고 읽는 사람의 손은 어느새 주인공의 팔을 잡고 있다. 읽는 사람의 발은 돌아가려다 이야기의 미로에 길을 잃고 읽는 사람의 마음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넘는다.”

(다나카와 슌타로의 시 <숲에게> (나태주 엮음,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앤드, 2021, 198쪽))




20대 초반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L'étranger)」을 읽을 때가 그랬다. 내 눈은 작가가 펼쳐 논 ‘부조리’의 숲을 헤집고 있었다. 내 귀는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주인공 뫼르소의 실존적 외침을 들었다. 정리할 수 없는 내 속 수많은 말들은 입술을 넘지 못했고, 손은 전율로 떨렸다. 내 발은 이야기와 현실 사이를 헤매듯 맴돌았고, 마침내 마음은 (다행스럽게도) 묘하면서 묵직한 희망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내게 책 읽기는 마법 지팡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나들 수 있게 한다. 내 존재의 소중함과 혼자 아님을 일깨워 살아갈 힘도 준다. 해서 읽는 행위의 끝에는 늘 느긋함과 기쁨이 이어진다.


내 인생에서 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십중팔구 버텨내지 못했을 테다. 눈이 침침해져 책 읽기가 예전 같지 않아도 내가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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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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