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세상 살다 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중략) 세상이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수십억분의 1만큼은 좋아지길 바라고 수십억분의 1만큼만 힘을 보탠다면 사람으로서 살다 간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정도로 나는 인생의 의미를 정리했다.”
(김선주 지음,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한겨레출판, 2010, 49쪽)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잠시 한순간은 퇴보하는 듯 보여도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그 믿음에 더해 세상이 나아지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사는 보람이자 인생의 의미라 여기며 산다.
유달리 소심하고 겁이 많던 때가 있었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끄트머리에 들어간 대학 시절, 나는 반독재 투쟁에 제대로 한번 나서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만 자유롭고 정의로운 생각이 가득했을 뿐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나 자신의 비겁함에 늘 마음 한켠이 답답했다. 못난 기질 탓으로 돌려보기도 했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후로 다시는 후회하지 않으려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하자 노력했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부채 의식은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12・3 내란사태 한 달 반. ‘응원봉’과 ‘키세스’의 장엄한 물결은 감동 그 자체였다. 광장의 신세대는 즐겁게 치열했고, 아름다웠다. 미래를 밝히는 빛의 세상이었다. 신기하게도 빚진 마음보다 뿌듯함과 고마움이 나를 감쌌다. 이제부터는 내 안의 묵은 부끄러움이 걷히려나 싶어 괜히 설레기조차 한다.
ⓒ 정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