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ble shot Valencia in Spain 마지막 이야기
일요일 아침, 유독 개운하게 눈을 떴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가벼웠다.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뭔가가 변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아야가 떠나는 날이다. 여느 때처럼 함께 조식을 먹고 늘 그렇듯 깔깔 거리며 세 접시를 비웠다. 발렌시아에 머문 동안 가장 정이 많이 든 친구, 짐을 싸는 아야에게 사진을 한 장 찍자고 요청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을 조명 삼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사진을 보더니 아야가 한마디 했다.
"우리 둘이 똑같이 웃네"
오늘은 자전거를 빌려 시내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발렌시아는 땅 자체가 평평하고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어서 자전거 타고 다니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자전거를 잘 탈 줄 모른다 하하하 핫.
Y가 서른 살 생일 선물로 자전거 타기를 알려주겠다며 한강 공원에 데려간 것이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된 계기였다. 그러니까 나는 서른 이후에 자전거 타기를 배운 것이다. 물론 어렸을 때도 배우기를 도전해보긴 했으나 워낙 운동 신경이 둔한 데다 겁도 많아서 알려주겠다는 사람이 다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망원동 한강 유수지에는 누구라도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해준다는 자신만의 비법을 가진 아저씨가 계셨다. 덕분에 서른 넘어 처음 자전거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직진만 가능했지만 부단한 연습 끝에 방향을 트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다. 길에 사람이 많으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패닉에 빠진다. 연습을 위해 자전거를 가지고 한강공원을 달려본 적은 있지만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타 본 적은 없었다. 이런 주제에 여행지에서 자전거 타는 것은 또 로망이라 빌렸다가 사고 날 뻔했던 경험도 부지기수, 이래 놓고도 이번 발렌시아 여행에서도 자전거 타고 시내 구경하기를 꼭 해야 할 목록에 적어 넣었다. 호기롭게 빌렸지만 덜덜 떨렸다. 골목 하나를 벗어나지 못해 자전거를 다시 반납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고 올라탔고 목적지를 찍었다. 그리고 이번엔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탁 트인 하늘을 향해 달릴 때 느꼈던 그 자유로움을 어느 무엇에 비교하랴.
일요일 파티 전에 블랙 컬처 강의와 콘서트가 있었다. 코리 해리스라는 아티스트가 나와 어린 시절부터 미국의 카페를 돌며 블루스를 연주하고 여러 음악가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나는 내가 어디에서 알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라고 입을 떼며 문화는 모두가 향유할 때 의미 있다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 지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힘이 있었고 그의 연주와 노래에는 마음을 끄는 울림이 있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그것의 뿌리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런 시간을 마련한 더블샷 발렌시아 행사 측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마지막 날이라 사람은 더 적었지만 그만큼 더 여유로웠다. 강습도 대회도 다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늘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파티에 참여한 것 같았다. 놀랍게도 공식 일정은 오전 7시 30분에 다 같이 아침 먹는 것으로 끝난다. 이 사람들 잠은 도대체 언제 자는 걸까.
음악당에서의 메인 파티가 끝나고 애프터 파티는 첫날 웰컴파티가 있었던 La escuela de rusafa에서 이어졌다. 화려한 조명 대신 군데군데 초를 켜 놓았는데 일렁이는 불빛 탓인지 그 앞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좀 더 애틋해 보였다. 음악은 블루스며 팝이며 퓨전 음악이 뒤섞여 있었고 누구와 춰도 그 날의 베스트 댄스였다. 하지만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3박 4일간 가장 춤을 많이 췄던 에밀슨이 밖에 까지 나와 배웅해줬다. 언제건 어디에서건 꼭 다시 만나 춤출 수 있기를 바라.
저녁 비행기를 탄 덕에 창문을 통해 해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엔딩인가!. 온 세상을 붉게 물든 노을을 보며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의 미래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것 선택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수많은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그것에 책임을 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떠나보니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 정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주어진 상황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고부터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무탈하게 여행에서 돌아온 것에 감사한다. 길에서 만난 따뜻한 인연들에게 감사하다. 무엇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어서 집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스페인산 와인과 치즈와 하몽과 빵을 늘어놓고 걱정해주었던 친구들에게 나의 모험담을 풀어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