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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아 Nov 10. 2019

때로는 목적없이

2019 년 10월 barcelona  #2.

"나 갑자기 바르셀로나에 가고 싶어 졌는데  왜 이렇게 가고 싶은지 모르겠어"

"그럼 그 이유를 찾으러 가야겠네"

그렇다. 한 달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르셀로나행 티켓을 샀다. 불혹을 앞둔 나이에 이렇게 충동적으로 살아도 되는 것인가. 회의감과 불안감에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모두들 가고 싶으면 가야 한다고 대답했다.(크아~ 이것이 나의 친구들의 클래스! )

"선생님, 우리 나이에 이제 나중은 없어요.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니까요"

매일 나에게 요가 수업을 듣는 학생조차  바람이 불어올 때 떠나야 한다고 등을 떠밀었다.

스카이 스캐너를 열고 가능한 날짜를 넣어보며 요리조리 가격비교를 할 때만 해도 불안했던 마음이 티켓 결제를 하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불안함이 사라진 자리엔 설렘이 남았다.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분 좋은 기대감이었다.


2019.10. 17. 프랑크프루트 경유, 루프트한자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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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떠나오긴 했으나 막상 도착하니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당장 예약한 숙소나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일단 첫날은 밤 비행기 도착이니 공항에서 가까운 곳으로 잡고 푹 자자. 두 번째 숙소의 체크인 시간은 오후 4시. 그 사이에 뭘 할까 하다가 에어비앤비 익스피어리언스로  통해 요트 관광을  예약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호스팅 받는 서비스였는데 흥미로운 것들이 꽤 많았다. 자전거 타기, 달리기, 요트 타기, 요가, 빠에야 만들기, 보케리아 시장 장보기, 공원에서 그림 그리기, 숲에서 명상하기, 나만의 속옷 만들기 등등,,  마침 시간이 딱 맞아 요트 타기를 선택했는데 당일 오전에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오후 시간대엔 바람이 불지 않을 것 같아. 저녁에 만나는 게 어떨까"

어쩔 수 없지.. 오후의 할 일이 사라졌기에 최대한 느긋하게 움직였다. 12시에 맞춰 체크아웃을 하고 다운타운으로 가는 기차역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간밤에 푹 잤고 아침도 든든히 먹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낯설지 않고 편안했다. 숙소가 있는 에스파냐 광장 역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아직 체크인하기엔 이른 시간이기에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았다. 지도를 보니 가까운 곳에 호안 미로 공원이 있었다.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아레나 쇼핑센터를 끼고 돌아가면.... 쇼핑센터라고는 하지만 외관이 특이해 멈춰 섰다. 그리고 점심 뷔페가 12유로라는 말에 혹해 점심을 먹는 바람에 공원은  못 갔다는.... (아침 든든히 먹었다며.....)


The work club 원하는 재료를 넣어 건네면 그 자리에서 볶아내 준다.  앞자리 커플이 나 못지않게 열심히 먹었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요트 투어 호스트인 리카르도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저녁이 되니 바람이 너무 거세졌다. 안전을 위해  오늘은 요트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약속 시간을 한 시간 남겨둔 때였다. 이미  지하철로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요트 구경이나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둣가에 도착해 리카르도를 만났다. 리카르도는 섬세한 조각처럼  훤칠하게 생긴 이탈리아 청년이었다. 갑작스럽게  약속을 취소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바람을 예측하는 앱을 보여줬다.  지금은 별 문제없어 보이지만 수문 밖을 나가면 파도가 무척 거셀 거다. 엊그제 무리해서 나가봤는데 다들 멀미하고 토하는 등 너무 고생하더라.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며 거듭 사과했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지. 나는 충분히 이해하니 걱정 말라고 했다.  대신 맥주를 한 캔 얻어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리카르도는 사실 건축일을 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왔는데 일하던 회사가 없어지고 건축업의 전망이 너무 어두워 항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배를 타고 다녔던 이곳저곳에 대한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이 금세 갔다.

"그나저나 너 여행하기 좋지 않은 시기에 온 것 같다. 내일은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을 거래. 쓰레기를 모아서 태운다더군 "

까딸로냐 독립에 관한 그의 의견을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난 이탈리아인이니까. 어느 쪽이든 나와 상관은 없지"

"그래도 넌 여기 살고 있잖아"

"그건 그렇지"

처음 왔을 때보다 바람이 더 거세졌고 약간의 취기까지 더해져 어지러웠다. 밖으로 나왔다. 하늘 저편이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더 머물겠된다면 한 번은 항해를 하게 되면 좋겠어. 바다에서 보는 석양이 정말 아름답거든"

꼭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그와 헤어져 노을 지는 하늘을 향해 좀 더 걸었다. 다리 위로 올라가자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든 하늘이 더 가깝게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전에도 본 적이 있던가. 꿈속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볼을 꼬집어 볼 정도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노을만 바라보며 한없이 걸었다.  오렌지 색이었던 하늘은 어느새 핑크빛으로 또 어느새 보랏빛으로 바뀌더니 이내 깜깜해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진 촬영하던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더 이상 이쪽으로 걸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멀리서 검은색 차가 다가오더니 내 옆을 쏜살같이 비켜갔다. '여기서 길을 잃으면 안 돼'  지도를 열고 행여 놓칠세라 폰을 손에 꽉 쥐었다.

바르셀로나 도시의 끝과 요트 선착장을 연결하는 다리, 인스타 명소인 듯 포토 슈팅 장면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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