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여름. 강렬한 뙤약볕을 머리 위에 두고 아버지께 운전 연수를 받던 때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MB 정부의 간소화된 운전면허 시험에 역정을 내시며 딸이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수 온갖 운전 기술들을 가르쳐 주셨다. 그중 최대 난제는 1종 보통 운전의 오르막 정지 후 출발이었는데, 클러치에 발을 떼고 엑셀을 밟을 때마다 등 위로 땀이 흘러가던 감각이 생생하다. 그 후 대부분의 트럭에 자동변속기가 장착되어 출고되는 것을 보기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때 헛 땀 흘렸다'라며 아버지와 지금도 농담을 한다. 그렇게 혹독한 연수를 받고 기세 좋게 면허를 손에 쥐고 돌아온 지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나는 부모님께 차를 사겠다고 말씀드렸다. 주변에서는 '스무 살 여자애한테 벌써부터 무슨 차가 필요하냐', '차 있는 남자친구를 만들어라'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며칠이 지난 후 부모님으로부터 "필요하면 사라. 단, 네 돈으로 사고 네 돈으로 유지해라."는 말씀이 돌아왔다. 그 말이 떨어진 다음 날 오후, 나는 은회색의 스펙트라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의 내 생활은 언제든 그 은회색의 차와 함께였다. 차량 넘버가 3777로 무려 '쓰리 세븐'이라는 과분한 메타포를 가진 중고차 칠칠이와 함께 넓혀 갔던 세상들을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운전을 하기 시작한 첫 주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원형 로터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한 시간을 맴돌며 감상하게 하더니, 그다음 주쯤엔 차선 변경을 하지 못 한 채 그대로 고속도로로 냅다 진입해서 계속해서 북진해 갔다. 다행스럽게도 북한 땅을 밟기 전에 차선 변경을 하게 되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우리 국토의 광활함을 몸소 느꼈던 그날의 기억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 태어났던 칠칠이는 내게 온갖 세상을 보여주었다.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존재로만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인지하게 해준 것을 비롯해 쉽사리 가볼 수 없었던 장소에도 마음을 가지고 시동을 걸면 언제든 나를 데려다주었다. 은회색의 차체에 나의 마음과 열정을 온전히 싣고 다니던 시간들이었다. 이전까지 나를 둘러싼 벽이라고 느꼈던 정물 같은 환경들이 칠칠이를 통해 문이 되어 다가왔다. 나는 그것을 열고 문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올해 여름, 나는 인근의 조그만 해수욕장에서 첫 바다 수영을 했다. 차선 변경도 할 줄 모르는 주제에 차를 몰고 다니던 기세 좋던 시간들 위로 시나브로 걱정이 쌓여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스무 살의 기개는 어디로 갔는지 낮은 모래톱 근처에서 철벅거리다 잔뜩 바닷물을 먹었다. 적어도 일주일은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무렵, 내 눈앞에 새로운 문이 생겨났다.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아니 오히려 알고 싶지 않은 눅눅한 자국이 베어 있는 벽처럼 느껴졌던 바다가 이제는 자신을 열고 나가보라 말한다. 모래톱 너머의 바닷속은 어떤 모습일까. '바다'와 '궁금'이 한 문장 위에 떠오른 최초의 순간이었다. 10여 년 전 나를 둘러싼 문들을 열고, 그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환경 속에 나를 숨 쉬게 했던 칠칠이처럼 수영은 세상의 모든 물을 배경이 아닌 내가 현존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준다. 그날 이후 매일 밤 세상의 모든 물에 몸을 띄워보는 상상을 마지막으로 잠에 든다. 처음 운전대를 잡고 길을 나서던 때처럼 어쩌면 처음 만나는 생경한 물의 감각 속에서 나는 길을 잃고 한 시간씩 맴돌거나, 계속해서 북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들을 외면할 수가 없다. 오래전 낯선 배경 속에서 숨 쉬는 내 모습이 준 순수한 희열과 성취를 그리고 새로 마주하게 된 세상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운전을 통해 넓어진 나의 세상이 수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만큼 새로이 확장되어 간다. 문득 사방이 가능성으로 넘실거리는 기분이 든다.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이 실린다. 어쩐지 손의 뼈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질 때까지 문고리를 쥐고 망설이는 것이 느껴지지만, 나는 머지않아 내가 이 문밖으로 나가리라는 것을 잘 안다. 나의 첫 자동차 칠칠이가 넓혀 준 세상에 감탄하던 기억이 아직 살갗에 남아 있으므로. 그리고 나의 오랜 친구가 내게 지어 준 '우당탕탕'이라는 호(號)처럼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므로. 곧 손에 쥔 이 문고리를 힘주어 밀고, 새로이 우당탕탕 문밖으로 나갈 것이다.